"편집자 주무르는 En선생"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보니 (전문)

중앙일보

입력 2018.02.07 11:14

수정 2018.02.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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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TBC '뉴스룸']

문단 내 성추행을 비판하는 시 '괴물'을 발표한 최영미 시인이 화제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괴물'이라는 시를 쓰게 된 이유를 밝혔다.  
 
최영미 시인은 "황해문화사로부터 시 청탁을 받았는데, 거기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제가 고민을 좀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내가 작가가 아니다. 내가 정말 가장 중요한 한국 문단의 문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는 'En선생'이 등장한다. 시에는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는 내용이 있다.
 
'뉴스룸'에서 최영미 시인은 "현실과 문학작품은 별개다"라고 하면서도 "당사자로 지목된 문인이 제가 시를 쓸 때 처음 떠올린 문인이 맞다면 굉장히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홍수민 기자 su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