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현행 고교 학생부의 기재 항목을 대폭 줄이고, 대학은 모집 정원의 3분의 1 이상을 학종으로 선발할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는 그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좋은교사운동본부 등 교육시민단체와 교사단체가 내놓은 ‘학생부 간소화’ 요구와 일치한다. 조 교육감은 “정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교육청의 개선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앞서 교육부는 교육현장에서 ‘금수저 전형’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 학종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학생부 간소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현행 고등학교 학생부의 기재 사항 10개 항목 중 창의적 체험활동·수상경력·봉사 활동 등을 없애고 7개 이내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학생부 간소화 논란, 왜 불거졌나
하지만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 등 서울 소재 대학 15곳의 학종 선발 인원은 전체의 43.3%(2만903명)로, 전국 대학 평균(23.6%)의 두 배에 가깝다. 특히 서울대는 올해 신입생 3363명 가운데 79%인 2660명을 학종으로 뽑았다. 고려대는 전체 신입생의 64%, 서강대는 49%를 학종으로 선발했다.
이처럼 상위권 대학으로 갈수록 학종을 통한 신입생 선발 인원이 많아지자 수험생들은 학종의 기본 전형 자료인 학생부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학생부의 기재 내용은 크게 교과 관련 항목과 비교과 항목으로 나뉜다. 이중 교과 관련 항목은 학생의 학교 수업 참여도와 내신 성적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소위 ‘편법’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
안상진 사교육걱정 정책연구소장은 “소논문 작성이나 봉사활동 등 사실상 학교생활이라 보기 힘든 활동을 학생부 기재 항목에서 과감하게 삭제하면 스펙 부풀리기 등 과열 현상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학들 “학생부 간소화 앞서 내실화 논의해야”
이들은 학종의 전형 요소 중 하나인 자기소개서를 예로 들었다. 학종 도입 초기, 일부 학생이 사교육업체에서 대필해준 자기소개서를 대학에 제출하는 등 공정성 논란이 일자 교육부가 자기소개서의 내용과 글자 수를 계속 제한해왔다.
국중대 한양대 입학팀장은 “교육부가 정해준 현행 자기소개서 형식대로 작성하면, 대다수 학생의 자기소개서가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되고 만다”며 “학생부도 이런 방식으로 간소화 하면 평가 자료로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학생부 간소화가 학종의 도입 취지와 상충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원회 한국외대 입학처장은 “내신과 수능 성적 등 정량화된 지표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학생의 잠재된 역량을 발굴하자는 것이 학종의 기본 취지”라고 강조하면서 “학생부의 기록이 다양하고 풍성할수록 학생의 잠재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데, 정부가 학종의 공정성 논란을 우려한다면서 학생부의 기록을 축소해 평가 지표를 줄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부 기재 항목은 유지, 대입 자료로는 제한적 허용”
실제로 서울의 한 일반고 국어 교사는 “4개 학급에 수업을 들어가는데,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을 적어줘야 하는 학생이 100명 이상이다”면서 “모든 학생의 특징과 역량을 파악해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교 교사도 “수업뿐 아니라 학생들의 동아리활동, 방과후수업 관리까지 맡게 되면 학기 말에 학생부 기록 업무로 밤을 새는 일도 흔하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학생부 기재 항목을 교과 성적, 교과 세특, 정규 동아리, 반장 등 자치활동 경력 등 서너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하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학생부 간소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학생부란 본래 학생의 전인적 성장을 담은 기록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김동석 한국교총 정책본부장은 “교육부의 학생부 간소화 방안은 학생부를 단순히 상급자료 진학 자료로만 치부한 것”이라며 “이는 학생의 교육적 성장 과정을 담은 종합적 기록물이라는 학생부 본연의 역할과 의미를 저버린 것”이라 말했다.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은 “학생부의 기재 항목은 큰 틀에서 그대로 두되, 대학의 평가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항목을 제한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 교장은 “학생부에 학생의 성장 과정이 종합적이고 진솔하게 담겨야 하는 게 맞다”면서 “하지만 학생부의 비교과 항목을 기재하기 위해 실제로 편법과 반칙이 일어나는 만큼 대학이 학종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때 비교과 항목 중 일부는 평가요소로 활용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