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북구 번동 해모로 아파트는 지난달부터 커피 한 잔 값인 3500원씩 관리비를 인상했다. 경비원 6명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주민투표는 하지 않았다. 경비원과 주민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던 주민대표가 이렇게 결정했다. 이 아파트 430세대가 한 달 3500원씩 더 내면 150만5000원이 모인다. 이를 6명에게 나눠주면 1인당 25만원가량 월급을 올려줄 수 있다. 아파트 관리소 측은 “커피 한 잔 값을 아껴 경비원 고용을 유지하자는 주민들의 공감대가 있어 별문제 없이 최저임금을 올려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원 바람 막은 착한 아파트들
‘커피값 아껴 최저임금 인상분 충당’
주민들 자발적 관리비 올리기 동참
야간당직 신설, 투표로 고용 유지도
실직 피한 경비원들 “더 노력할 것”
무급 휴게시간 연장이라는 편법 대신 제대로 근무시스템을 변경해 해법을 찾는 곳도 있다. 대전 둔산동 크로바아파트는 올해부터 경비원 근무형태를 격일제에서 하루 2교대, 야간 당직자 근무로 바꿨다. 경비원들은 오전 6시~오후 2시, 오후 2시~오후 10시 등 하루 8시간 2교대로 일한다. 밤 10시 이후에는 별도의 당직자가 근무한다. 이러면 휴게시간을 합쳐 실제론 월 360시간이던 근무시간이 월 220시간으로 크게 줄어든다. 그럼에도 이 아파트 경비원 40명의 월급은 220만원 정도로 차이가 없다. 경비원 입장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고 주민들은 비용 인상을 최소화 한 셈이다. 이 아파트 관리업체인 ㈜대흥의 이규화 대표는 “경비품질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경비원들의 근무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경비비용은 1.6%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현대아파트도 근무방식을 ‘2명씩 24시간 맞교대’에서 ‘1명 12시간 근무’로 바꿔 경비원 4명의 고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세종시 도램마을 9단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최근 기존 4명의 경비원을 2명으로 줄이는 안을 상정했지만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 경비원들은 “열정과 성의를 다해 근무하겠다”는 내용의 감사 글을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써 붙였다. 울산시 중구 태화동 리버스위트 주상복합 아파트는 최근 경비원과 미화원 임금을 인상할지아니면 휴게 시간을 늘리고 근무 인원을 조절할지 2개 안을 놓고 입주민 설문조사 방식으로 주민투표를 했다. 투표결과 입주민 73%가 경비원 4명과 미화원 2명의 임금인상에 찬성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 양해수(65)씨는 “임금을 올려준 주민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경비원들은 아침마다 ‘고맙고 사랑합니다’, ‘진짜 당신을 사랑합니다’ 등 구호를 외치고 업무를 시작한다.
김방현·임명수·최은경·김민상·김호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