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윤의 산 100배 즐기기(15)
돌아보면 늘 그 자리에 있어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가족이 그렇고 가까운 친구가 그렇다. 산도 마찬가지. 가까이 있어 언제든 오를 수 있으면 이내 익숙해진다. 그렇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느 순간 깨닫기 마련이다.
필자에게 도봉산이 딱 그렇다. 언제 어느 때 어디로 올라도 흐뭇한 경치를 선물해준다. 그래서 도봉산은 사시사철 등산객으로 붐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더하다. 단위면적당 탐방객 수가 가장 많은 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는 것이 결코 흰소리가 아니다.
단위면적당 탐방객 수 세계 최고
신선대는 사실상 도봉산의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주봉인 자운봉은 암벽 장비를 갖춰야 들어갈 수 있으니, 일반 등산객이 오를 수 있는 정상은 신선대인 셈이다.
필자와 일행은 오봉매표소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겨울 장비를 한 번 더 점검하고 산으로 향한다. 겨울산행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 가끔 등장하는 돌계단 오르막은 보기에야 운치 있지만 오르려면 호흡이 제법 가팔라진다.
그렇게 몇 차례 돌계단을 지나고 설핏설핏 언 눈길을 조심히 내딛고 오르면 이내 여성봉에 다다른다. 생긴 모양 때문에 여성봉이라 불리는 이 바위를 돌아 뒤쪽으로 들어가면 오봉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뷰포인트가 숨어있다.
날이 어지간히 춥지 않으면 이곳에 앉아 오봉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르거나 좀 더 넉넉히 짬을 내 사색에 빠져도 좋으련만. 막걸리 한 잔 마시고픈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봉을 눈앞에서 보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오봉으로 향하는 길은 여성봉까지의 오르막보다는 가파르고 난간이 있으나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커다란 통신 중계탑이 보이면 곧 오봉이다. 정상을 돌아 오봉이 나란히 펼치는 뷰포인트에 서면 그 옆 북한산 인수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오봉은 멀리서 보면 마치 아이들의 공깃돌처럼 오밀조밀하나 가까이서 보면 그 거대함과 웅장함에 새삼 놀라게 되는, 반전을 선사한다. 그 봉우리 한 곳 한 곳에 맑고 차가운 하늘이 더 가까이 내려앉은 광경에 한동안 넋 놓는다.
오봉 아래 헬기장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다시 신선대를 향해 길을 나선다. 시야 왼쪽으로 사패산 정상이 쑥 들어온다. 그렇게 주봉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계단 길옆 신선대에 다다른다.
자운봉, 바위가 블록처럼
정상에서는 서울 강북지역과 경기도 의정부, 고양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북한산을 향해 뻗은, 산행 내내 걸어온 산줄기며 사패산을 향해 뻗은 포대 능선과 사패 능선까지 선명하다. 북한산 주 능선도 골골이 눈앞에 드러난다. 이는 정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다음엔 사패산에서 올라 신선대로 올까? 아니면 망월사에서 신선대로 오르는 건 어떨까? 그 능선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행복한 상념에 빠져본다.
하만윤 7080산처럼 산행대장 roadinm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