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케이팝' 두려웠나…"'날라리풍 섬멸' 지시 김정은도 한국식 표현"
북한은 왜 금강산에서 열기로 한 공동문화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을까.
북측은 지난 29일 금강산 행사 최소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한국 언론이) 내부의 경축행사까지 시비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8일로 예정된 북한의 대규모 열병식 관련 보도에 대한 불편함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북한의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북한은 왜 금강산 공연과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합동 훈련 등 남측이 먼저 제안한 2가지 사안 중 마식령 훈련은 수용하면서, 유독 합동 공연만을 취소시킨 데 대한 합리적 이유가 되지 못한다.
한 당국자는 31일 “북한에서 한국의 케이팝(K-POP) 공연이 이뤄지지 못하게 된 데 대해 깊은 아쉬움이 있다”며 “2008년 박왕자 씨 피살사건 이후 폐쇄된 금강산 내 시설이 재차 열릴 수 있었는데 이 점 역시 상당히 아쉽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북한에 금강산에서의 합동 공연을 제안했던 전략적 배경에는 북한에서 케이팝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전파하겠다는 의도가 있었고, 이에 대해 북한이 거부감을 가졌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정은이 뿌리 뽑아야 한다고 했던 ‘온갖 비사회주의적 현상’의 핵심은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 등 한류(韓流) 문화로 추정된다.
북한은 한국 대중문화를 ‘남조선 날라리풍’이라며 배격하고 있다. 남한 문화에 대한 ‘섬멸전’을 벌이라는 김정은의 지시는 그만큼 한국의 대중문화가 북한의 체제 유지에 큰 위협이 된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북한을 탈출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 주민은 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에는 이불 덮어쓰고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에 대한 동경(憧憬)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를 넘어온 북한군 병사도 의식을 찾자마자 “남한 노래가 듣고 싶다”고 했다는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의 대중 가수가 북한에서 공연했던 전례는 있다. 그러나 이미 10여년 전 일이다.
2002년에는 가수 이미자ㆍ윤도현 밴드 등이 평양에서 공연했다. 2003년 평양 모란봉 야외무대에서 코미디언 송해와 북한 여성방송원 전성희가 ‘평양노래자랑’을 공동 진행했고, 베이비복스·신화·이선희 등이 참석한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2005년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는 조용필 콘서트가 열렸다.
실제로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에서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라는 표현을 썼다.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다’는 말은 북한에서 쓰지 않는 남한식 표현이다. 특히 ‘무결점’의 신적 존재였던 수령이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한 대목 역시 무오류성을 깬 표현으로 꼽힌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