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검증을 거친 후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까지 받은 내정자를 주저앉히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막판에 임명을 철회한 것은 그만큼 코피 전략과 한·미 FTA 폐기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집착이 강하다는 뜻이다.
빅터 차, 코피전략 반대하다 낙마한 듯
트럼프, 국정연설에서 군사 옵션 시사
미 행정부 내 대화파들의 설 땅 좁아져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차 내정자가 미국 내 손꼽히는 대북 매파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인물마저 반대했을 정도니 코피 전략이 얼마나 무모한지 짐작할 수 있다. 낙마 사실이 보도된 직후 차 내정자가 워싱턴포스트(WP)에 실은 기고문에는 그의 반대 이유가 잘 나와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제한적 타격에 대해 북한이 반격하지 못할 걸로 믿지만, 이는 큰 오산이란 것이다. 예측불허의 김정은이 보복을 자제하리라 확신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게 차 내정자의 주장이다. 차 내정자의 낙마 사태에서 보듯이 요즘 트럼프 행정부 내에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는 온건파들이 설 땅이 사라졌다고 한다. 대표적 대화파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마저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주한 미 대사가 중요한 자리다. 차 내정자의 낙마는 한·미 간 핵심 소통 채널이 앞으로도 반년 넘게 더 비게 됐다는 점에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통해 북·미 대화까지 유도하겠다며 북한에 끌려다니게 되면 미국이 어떻게 여길지 뻔하다. 그럴수록 미국은 우리와의 긴밀한 상의를 뒤로한 채 대북 군사행동이라는 모험에 나설지 모른다.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문제를 넘어 북·미 간 군사적 충돌의 불길한 전조임을 꿰뚫어 봐야 한다. 미 행정부의 강경 흐름을 미리 읽어내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