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결혼식 때 받은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明世子嬪 冊封 竹冊, 이하 죽책)’이 그의 삶만큼이나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15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31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죽책’을 공개했다. 프랑스 개인소장자로부터 구매해 국내로 들여온 과정도 밝혔다. ‘죽책’의 구매대금은 19만5000유로(약 2억5896만원). ‘리그오브레전드(롤)’를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전액을 지원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 추정
작년 경매 나와 … 150년 만에 귀환
2억6000만원 전액 지원한 게임사
문화재 지킴이로 그동안 43억 기부
31일 행사에 참석한 이태진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철수하면서 340여 종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태웠다. ‘죽책’은 그때 소실된 5000∼6000점의 문화재 중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추정에 따르면 ‘죽책’은 당시 프랑스 함대 사령관이었던 로즈 제독이 작성한 약탈품 목록 중 ‘상자 3개’안에 포함됐던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에 도착한 이후 ‘죽책’의 종적은 사라졌다. 당시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종이책만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선왕실의궤 등이 소장돼 있던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죽책’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6월. 프랑스 경매회사 타장(TAJAN)의 경매 물품 목록에 올라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김동현 차장은 “국외 경매에 나온 한국 문화재를 모니터하던 중 ‘죽책’을 발견했다. 소장자는 65세 여성으로 파리에서 보석상을 경영하던 할아버지 쥘 그룸바흐에게 상속받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경매 도록에는 ‘1759년 결혼과 관련된 문서’라고 적혀있었고, 추정가는 1000∼1500유로(약 133만∼199만원)였다.
재단은 고화질 사진을 구해 정밀 감정에 들어갔다. 이 경매품은 ‘효명세자가례도감의궤’(1819)에 글과 그림으로 남아있는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과 정확히 일치했다. 재질·서체·인각 상태가 매우 뛰어났고 보존 상태도 양호했다. 재단 측은 곧바로 경매회사에 경매 중지를 요청하고 소장자와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유물 가격 16만 유로, 수수료 3만5000유로 계약에 성공한 재단은 프랑스 정부의 문화재 국외 반출 절차를 거쳐 지난 20일 ‘죽책’을 한국으로 가져왔다. 구매 대금을 댄 라이엇 게임즈는 2012년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체결한 후 지금까지 43억원 이상을 기부한 기업이다.
‘죽책’은 6∼7개월 정도의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여섯 폭으로 구성된 ‘죽책’의 크기는 높이 25㎝, 너비 17.5㎝이다. 여섯 폭을 모두 펼친 길이는 102㎝다. 고궁박물관 서준 학예사는 “‘죽책’의 전시·관리와 학술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