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금까지 규제 혁신하겠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 한 게 뭐가 있나요. 현장에선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난 24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차 정부 업무보고 현장. 민간 참석자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직접 마이크 스위치를 켰다. “앞으로는 현장에서 체감하실 수 있도록 확실히 추진하겠습니다”며 몸을 낮췄다.
민간 전문가 초청, 쓴소리 경청 후 답변
'하얀 스케이트' 부처별 개인기도 눈길
대통령 또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닌 총리가 업무보고를 받은 것은 처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9일 당선된 후 각 부처별 보고를 받은 지 약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과, 정부가 공언한 책임총리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 작용했다.
이 총리는 지난 18일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대국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민께 ‘책임 장관’의 면모를 내보이고 정부 혁신의 실감을 느끼시도록 해야겠다”며 “그를 위해 정책 수행에서 장관님들의 얼굴이 드러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이 총리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입이 아닌 귀를 여는 데 중점을 뒀다. 각 업무보고 때마다 각 분야별 10명 가량의 민간 전문가를 참석시켰고, 이들이 적극적으로 자유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민간 전문가들도 쓴소리를 감추지 않았고, 총리도 빠짐없이 답변했다”며 “정부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각 부처별 개인기도 눈길을 끌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한 ‘하얀 스케이트’ 프레젠테이션이 대표적이다. 김 부총리는 1920년대 검은색 스케이트를 신던 관행을 깨고 흰 스케이트를 선택한 소냐 헤니 선수의 사례를 등장시켜 혁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업무보고에서 나온 약속이 불과 사흘 만에 공수표가 되는 일도 생겼다. 지난 23일 국민 안전과 재난ㆍ재해 대응을 주제로 열린 업무보고 사흘 뒤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업무보고에서 이 총리는 “국민의 안전과 안심을 지켜드리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라고 했다. 이 총리는 지난 27일 밀양 화재 현장을 찾아 "죄인이 된 기분"이라면서 2월5일부터 3월말까지 전국 약 29만개 시설에 대해 '국민안전 대진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한 부처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기존 업무보고보다 활기차게 토론이 진행되는 점은 신선했지만 말이 실행으로 이어지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