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자코메티의 조각은 그의 독창적 예술성과 천재성으로 인해 최대의 찬사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사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현대미술이라는 점도 그러한 작품에 대한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드는 것 같다. 2010년 런던 경매에서 1200억원(1억400만 달러)의 낙찰가를 기록하더니, 2015년 1600억원(1억413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언젠가 1000억원대의 피카소 가격을 이겼다. 매우 섬세한 작품이기에, 운송이나 보험이 많이 힘들어서 이렇게 대규모의 전시를 살면서 한번 본다는 것 또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자코메티는 스위스 태생으로 20세 이후 파리에서 활동하던 작가이다. 1901년 태어나 1966년까지 짧은 인생을 산 천재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미술사를 보면 놀랍게도 시대가 작가를 만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어떤 변화와 혁명의 시대는 늘 대단한 작가들을 낳았다. 20세기가 그 어떤 시기보다 많은 작가를 배출했고, 미술이라는 개념이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면, 분명 20세기라는 시간은 인간사에서 매우 특별하게 많은 가치와 패러다임이 변한 시대임은 확실한 것 같다. 우리가 지난 몇 년 전부터 인공지능이 가져올 4차산업에 대한 질문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보다, 아마도 19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기대와 놀라움, 나아가선 상당한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시간이었다. 특히 강대국들의 형성과 새로운 제국주의에 의한 제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과 그 시대를 살아낸 그 어떤 의식 있는 예술가라면 도대체 그러한 시대에 그들이 어떤 예술이란 것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은 쉬지 않고 했으리라. 길거리에는 발에 치이 듯 굴러다니는 형제, 이웃들의 시체들을 바라보며 예술가들은 그들이 살아내는 예술이 어떤 인생과 존재하는 진리를 찾으려는 투쟁적 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20세기와 함께 태어나서, 미술 조각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간의 본질을 발견하려는 발버둥을 친 작가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이다.
실존적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글쟁이 자코메티
자코메티는 1934년 뉴욕에서 첫 개인전을 줄리안 레비화랑에서 할 만큼, 좋은 시작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33세에 불과한 자코메티가 뉴욕에서 당시 파리의 피에르 콜 갤러리만큼의 명성을 갖는 화랑에서 개인전을 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고, 그의 초현실주의적 작품들은 국제 미술계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평생 딜러이자 파트너는 피에르 마티스 였다. 사실 이러한 상업적 꾸준한 지원이, 그가 그만의 언어를 구축하고 집요하게 자신의 세계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가 청동작품 제작에 투자를 하고, 파리의 매그 갤러리와도 계약을 맺고 더욱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경제적 성공이 그의 삶의 방식을 전혀 바꾸지 않았고, 그는 매우 검소하고 한결같았다. 그는 금전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파리 몽파르나스 아폴리트맹드롱가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평생을 보냈고, 셀렉트 카페 또는 쿠폴 카페에서 늘 식사를 하며 일관성 있는 삶을 살았다, 그는 단지 치열하게 모델과의 집요한 싸움에 전념했다. 사실 모델을 놓고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가를 우리는 잘 모를 수 있다. 그는 평생 몇 안 되는 모델과 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남자 조각은 그의 동생 디에고(Diego Giacometti)가, 또 여성모델은 그의 아내인 아네트 암(Anette Am)이 맡았다. 그들은 하루에도 5~6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서 그의 작업 대상이 되었다.
본 전시에서 많이 소개되는 자코메티의 후기 작품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사물과 인물을 자신만이 인지하고 보이는 대로 재현하기 원했기 때문에, 대상의 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지 작품의 대상이 모델 뿐만 아닌 그 모델이 있는 공간과 주변 사물과 맺는 관계들까지도 시각화하려는 것을 추구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조각해도 그의 또는 그녀의 영혼이나 느낌, 분위기, 기운까지도 함께 표현하려 했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회화 작품에서 흔적이 뚜렷했다. 마치 유령이 나올 것 같은, 멀리 있는 모델의 대상과 주변의 공간, 나중에는 자유라 불리는 회색계열로만 만들어지는 회화 작업이 이러한 일련의 갈구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1955년 구겐하임 대규모 회고전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첨예하고 실존적 경험이었던 제1, 2차 세계대전의 한 복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런 시대상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그만의 독특한 질문과 사색을 하게 하는 토양이 됐다. 예술의 본질이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탐구라면, 그는 인류 역사의 도도한 흐름과의 교류 과정을 통해 그만의 정신세계를 구축했고, 결국 새로운 조각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LA=이지윤 미술사가 ‘숨’프로젝트 대표
※ 이지윤은…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박사/ 미술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이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자하 하디드360도]을 기획하였고, 지난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컬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