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강제 개봉’으로 대변되는 법원 내 일부 판사의 공격적 성향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당초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인사 전횡이 있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지만 실제 이를 입증하는 문건은 발견되지 않았다. 법원 안팎에서 “결국 특정 판사들의 인사 불만이 PC 개봉의 시작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법 행정권 남용 논란 문건 보니
“우병우, 원세훈 판결에 불만” 문건도
이 문건엔 항소심 선고에 대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반응도 담겨 있다. “우 수석이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을 시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했다는 것이다. 실제 원 전 원장 사건은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에 회부됐고 검찰의 일부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전원일치 판단과 함께 파기환송됐다.
항소심 선고 뒤 법원행정처와 청와대의 교감이 이뤄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문구도 있었다. “법무비서관을 통해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을 설명했다. 법무비서관이 법원행정처 입장을 BH에 잘 전달하고 내부 동향을 신속히 알려주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해당 문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 의사가 대법원 판단에 영향을 준 거라면 심각한 사법침해 문제”라고 말했다.
행정처, 인권법연구회 동향 파악
진보 성향 판사들과 이들이 속한 판사 모임에 대한 대응 방안이 담긴 문건도 여럿 발견됐다. ‘사법행정위원회 개선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2016년 2월 24일) 문건이 대표적이다. 사법행정위원을 각급 판사회의에서 선출해야 한다는 일부 판사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건으로 추정된다. 이 문건에선 법원 내 진보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 12명을 ‘핵심그룹’으로 규정했다. 이어 “핵심그룹의 조직적 활동으로 위원회 의의가 반감될 우려가 존재”한다며 “핵심그룹 활동이 일반 판사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고립시킬 필요가 있음”이라고 적었다. 사법행정위는 일선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와 의견 수렴을 원활히 하기 위해 2016년 4월 출범한 기구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2016년 3월 7일)은 2016년 의장 선거에 출마한 인권법연구회 출신 박모 판사를 견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 판사에 대해선 “단독판사회의 명의로 각종 건의문, 성명서를 채택하거나 법원장, 수석부장판사 등의 사법행정라인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음”이라고 분석했다. 상대 후보를 지원하는 방안도 담겼다. 핵심그룹의 지원을 받는 박 판사의 당선을 저지할 필요 있고, 투표 당일 상대 후보를 추천하고 지지 발언할 판사를 섭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상고법원 반대 판사들 압박” 내용도
법원행정처는 진보 판사들의 동향 파악 문건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각급 법원 주기적 점검 방안’(2016년 8월 24일)은 동향 파악에 앞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문건이다. 문건 상단엔 “공식적 방법 외에도 비공식적 방법을 동원해 정보를 수집하도록 함. 반발이 예상되므로 보안 유지가 필요함”이라고 적혀 있다. ‘비공식 수집 방법’에 대해서도 적혀 있다. “거점 법관(법원행정처 출신)을 통한 법원 동향 파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판 리서치를 통한 정보 수집” 등이다.
양 대법원장 시절 추진된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판사들의 동향을 다루는 문건도 나왔다. ‘상고법원 관련 내부 반대동향 대응 반안’(2015년 7월 6일) 문건엔 “핵심세력 움직임의 목적과 세 결집 정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적혔다. 또 “반대 법관 설득이 어려운 경우 등에 한해 압박책을 고려함이 타당하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과거 법원행정처의 정책을 비판해온 인권법연구회 출신 차모 판사에 대한 동향 파악 문건도 있었다. 2015년 작성된 2개 문건에는 차 판사의 출신 학교, 독일 유학 경력 등이 기재됐다. 또 “재판 전날 밤을 새우고 수시로 야간 및 주말 근무” “사건 메모를 하다가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함” 등 사적인 정보도 적혔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