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석의 앵그리 2030] ② 직장인 집사려면 25년 "보유세 같은 소리하네"

중앙일보

입력 2018.01.22 05:29

수정 2018.01.2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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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구름 위에 올라갔다 온 기분이다. 이제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
직장인 하동현(37) 씨는 지난해 12월 초 비트코인을 샀습니다. 시세가 1 코인당 1400만원쯤 하던 시점이었죠. 대기업에 다니는 그는 평소 금융투자에 밝고, 신상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암호화폐는 좀 꺼림칙했다네요. 그러나 한 달 만에 50% 이익을 거뒀다는 친구의 말에 더 늦기 전에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약 8000만원을 투자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월 초 비트코인 시세는 2500만원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한 달 새 기적이 일어난 거죠.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규제 방침을 밝히고, 거래소 폐쇄를 언급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손해도 이득도 없이 샀던 가격 그대로 정리하고 나온 그는 “꿈을 꾼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돈 불리는 재미 느껴보지 못한 2030
취업했더니 사상 첫 초저금리 강풍
박스권 머문 주식시장서 패배 연속

고공행진 집값…내 집 마련 꿈 멀어져
수도권서 집 사려면 최소 19.8년 소요
청년 주거대책 쏟아내지만 겉핥기 수준

새해, 암호화폐의 광풍이 나라 전체를 휩쓸고 있습니다. 규제냐 탈규제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세대 갈등으로 진화할 조짐도 보입니다. 최근 젊은 층의 관심은 암호화폐로 크게 쏠렸습니다.
 
지난해 11월 한 가상화폐 거래소가 이용자 4000명을 상대로 조사해보니 20~30대 이용자의 비중이 58%에 달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하고 있거나, 해봤다는 사람이 다수인 걸 보니 영 틀린 얘기는 아닌 듯합니다. 저 역시 거래 경험이 있습니다. 딱히 이득을 보진 못했습니다.


암호화폐 가격은 꾸준히 오르다 1월 초 정부가 규제에 나선 뒤 폭락했습니다. 손실을 본 사람도 젊은 층에 더 많았겠죠. 다수가 반발합니다. ‘나라가 언제부터 도움을 줬다고 왜 이제 와 하라 마라 간섭하느냐’는 겁니다. 
 
직장인 손재은(33)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을 씻고 찾아도 돈 불릴 방법이 없는데 처음 가능성이란 걸 본 게 비트코인이었다. 도박이라느니, 게임 아이템 ‘현질’하듯 한다느니 쉽게들 말하는데 어쩌면 지금 20~30대는 다시 없을 기회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코너에 몰린 ‘쭈글이’의 마지막 발악 같은 거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손 씨의 진단을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단 지금의 20~30대가 돈 불리는 재미를 느껴본 적 없는 세대인 건 확실합니다. 가뜩이나 취업이 늦었는데 월급이란 걸 받기 시작하니 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저금리는 청년 세대를 강타했습니다. 저금리가 고착화할수록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힘듭니다. 간단합니다. 원금 때문이죠. 이자율이 같은 1%라도 10억원의 1%와 1000만원의 1%는 전혀 다릅니다.
 
금리가 높으면 가난한 사람도 돈을 불려갈 방법이 있지만, 저금리 땐 사실상 답이 없습니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자산 증식에 걸리는 시간은 가속적으로 느려집니다. 적금에 돈을 넣고, 원금이 2배가 되는 시간을 따져볼까요? 
 
금리가 5%일 때는 14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4%면 18년, 3%면 23년, 2%면 35년, 1%면 70년이 필요합니다. 각각 1%포인트 격차지만 소요 시간은 금리가 낮아질수록 훨씬 깁니다.
 
은행에 답이 없으니 일부는 주식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하필 또 이 기간에 국내 주식시장은 완벽하게 박스권에 갇혀 있었습니다. 2007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10년 동안 코스피는 고작 6.8% 상승했습니다. 연 1%도 안 됩니다. 
 
그러다 2017년에야 박스권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등 일부 대형주를 제외하면 상승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2017년 코스피에 투자한 외국인과 기관은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을 통해 각각 50.6%, 45.2%의 이익을 거뒀지만, 개인은 19.2%에 그쳤습니다. 외국인은 상위 10개 종목 중 1개만 마이너스였지만 개인은 10개 중 6개가 마이너스였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개미의 무덤’으로 불리던 코스닥도 오랜만에 힘을 냈습니다. 올 1월 16일엔 무려 16년 만에 900선을 돌파했습니다. 석 달 전인 10월 16일 659.41보다 무려 36.7%나 올랐습니다. 개인투자자는 2008년부터 딱 한 해(2013년)만 빼놓고 매년 코스닥을 순매수해왔습니다. 
 
드디어 재미를 좀 보나 했는데 이 시기 20~30대는 딴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암호화폐가 급등하던 시기와 정확히 맞물리거든요. 잠깐 기뻤지만, 곧 암호화폐는 급락했습니다.
 
“4년을 기다린 코스닥 회사가 내가 이더리움 한다고 1월 초에 돈을 뺐더니 40%나 올랐더라. 그새 이더리움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이틀 연속 급락하기에 못 버티고 본전에 팔았다. 팔고 나니 이더리움이 또 40% 올랐다. 나는 그냥 안 될 모양이다.” 직장인 김재길(가명·33) 씨의 한탄입니다.
 
자산 증식이 이렇게 힘든데 목표는 점점 멀어집니다. 바로 ‘내 집 마련’입니다. 세대와 무관하게 한국인의 집 욕심은 유별나죠. 셋방살이를 면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던 60~70대의 억척스러움이 DNA에 각인돼 내려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집의 의미는 좀 독특합니다. ‘살 것’이지 ‘살 곳’이 아니거든요. 암호화폐 광풍에 20~30대의 투기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적어도 이 나라에서 진짜 투기판은 부동산입니다. 1년에 1억~2억 원씩 집값이 오르는 것이야말로 진짜 ‘비정상’이죠.  

1월 16일 코스닥이 16년 만에 900선을 돌파해 901.23으로 장을 마감했다.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그런데 이 비정상적 상황, 날로 심해집니다. 한국감정원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2017년 12월 전국 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2억7899만원입니다. 서울은 5억4915만원, 수도권은 3억7931만원, 지방은 1억8804만원입니다. 
 
사실 부모의 큰 도움을 받지 않은 이상, 일부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이상 20~30대에겐 엄두가 안 나는 액수죠.  
 
통계청이 발표하는 가계동향을 보면 가계 소득 구간별로 소득과 지출을 알 수 있습니다. 소득 상위 40~60% 3분위 가구의 2016년 4분기(통계청은 2017년부터 가계동향조사의 소득과 지출을 분리해 발표하고 있으나 아직 2017년 지출 부문이 공개되지 않아 2016년을 기준으로 함) 월평균 소득은 391만2847원입니다. 
 
여기서 비소비지출(세금이나 이자비용 등)을 뺀 금액을 처분가능소득이라고 하는데 이게 323만원입니다. 이제 써야죠. 마트도 가고, 옷도 사 입고, 가끔 병원에도 갑니다. 교육비 역시 빼놓을 수 없죠. 이렇게 나가는 돈(소비지출)이 239만원입니다. 남은 돈(가계 흑자액)은 84만원 정도네요. 보통 사람들은 이 돈을 저축하거나 부채를 갚는 데 쓰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과연 이 돈을 얼마나 모아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까요? 전국 평균(2억7899만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332개월입니다. 무려 27.7년입니다. 물론 집에다 현금으로 쌓아두진 않을 테니 적절한 인플레이션을 고려해야죠. 
 
이 돈을 연 2.5% 적금(단리, 세전)에 가입해 모은다고 치면 약 262개월(21.8년)이 걸립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해가 갈수록 소득도 늘어나겠죠. 해마다 가계 흑자액이 5만원씩 증가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래도 194개월, 약 16.2년이 걸립니다. 3분위에 속하는 30세 가장이라면 47세가 돼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 정도면 할 만한 거 아니냐고요? 이건 해외여행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누가 아파서도 안 되고, 전세금을 올려주는 일도 없이 순전히 집에 남는 돈을 전부 모은다는 전제하에 그런 겁니다. 
 
30~50세가 대부분 자녀 양육과 주거 환경 변화 등으로 지출이 많은 시기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한 가정이죠. 
 
게다가 20~30대의 50% 이상은 서울과 수도권에 삽니다. 같은 계산법을 서울과 수도권에 적용해볼까요? 서울은 정확히 25년(300개월), 수도권은 19.8년이 걸립니다. 사실 서울에서 5억4915만원으로 살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군요.
 
물론 돈을 다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훨씬 빨리 집주인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출을 받으면 됩니다. 어차피 조삼모사입니다. 선배들은 “집 불려가는 재미가 컸다”고 하는데 사실 그 재미도 2030은 못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워낙 내 집 마련에 오랜 기간이 걸리니 첫 집이 마지막 집이 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박재민(37) 씨는 29살 때 취업해 35살 때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그간 모은 돈 1억 원에 대출 1억 원으로 2억 원짜리 전셋집을 마련했습니다. 
 
원금과 대출 이자를 함께 갚고 있는데 올 6월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 게 확실합니다. 시세가 그렇거든요. 
 
박 씨는 “이런 식으로 가면 전세 대출을 갚은 데만 최소 5~6년이 걸릴 것 같다”며 “40대 초반엔 대출을 끼고서라도 아파트를 장만해야 하는데 또 10년 넘게 빚의 노예로 살 생각을 하니 벌써 갑갑하다”고 말합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부동산 가격 안정은 역대 모든 정부의 정책 목표였습니다. 대출을 조였다가 풀었다가, 세금을 내라고 했다가 깎아줬다가 반복했죠. ‘빚내서 집 사라’며 대출 규제를 푼 게 불과 4년 전, 그걸 다시 묶은 게 지난해입니다. 
 
어떤 대책을 쓰든 단 한 해도 가격 상승세(서울 기준)가 멈춘 적은 없었습니다. 최근엔 정부가 보유세를 언급하고 나섰습니다. 재산세가 맞니, 종합부동산세가 맞니 논쟁이 치열합니다. 
 
그런데 20~30대는 별 관심 없습니다. 집이 있어야 세금을 내죠.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요? 그 역시 남 일입니다. 일반 서민이 비트코인이 아니고서야 평생 20억 원짜리 강남 아파트에 살 일은 없으니까요. 어차피 강남 4구 아파트 매수자의 60%는 강남 거주자입니다. ‘그들만의 리그’죠.
 
그래도 청년들은 꾸역꾸역 분양시장을 맴돌며 고민합니다. 기존 주택이 워낙 비싸니 그나마 신규 분양을 노리는 거죠. 그러나 몇 번 도전하다 실패해보면 깨닫게 되죠. ‘불가능한 거구나!’
 
분양 때 적용하는 청약 가점제란 게 있습니다. ①부양가족 수, ②무주택 기간, ③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봅니다. 
 
직장인 백승운(36) 씨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2017년 한 해 동안만 7곳에 청약을 넣었다. 모두 떨어졌다. 추첨은 로또고, 가점은 턱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부양가족이든 무주택 기간이든 40~50대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방법이 없다. 남들 다 한다는 부모님 위장 전입까지 했지만 아이 하나로는 대세를 바꾸기 어려웠다.” 
 
이젠 더 힘들어졌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은 청약가점제를 100% 적용합니다. 추첨 운을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해진 거죠. 
 
신혼부부 특별공급이 있지만, 전체 분양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합니다. 그마저도 결혼 5년 이내(1순위는 3년)만 가능한데 이 때문에 혼인신고를 미루는 건 이제 꼼수도 아닙니다. 
 
또한 자녀가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데 아이 때문에 내 집 마련 경쟁에서 또 한 번 밀리는 상황인 겁니다. 다행히 정부가 11월 29일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이 자녀 요건을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없어도 지원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 자녀가 있어야 1순위입니다.  
 
기준도 너무 기계적입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이든 청년 임대주택이든 지원 대상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00%(맞벌이는 120%) 이하’입니다. 100%는 3인 가구 기준 약 480만원 정도입니다. 
 
신혼부부 전용 주택구입자금 대출과 전세대출 대상자도 부부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만 가능합니다. 월평균 584만원꼴인데 간신히 이를 초과해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맞벌이 부부가 적지 않습니다. 
 
직장인 진수경(33) 씨는 “공제 후 실제 소득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친다”며 “소득이 어중간한 ‘보통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차상위계층 등 아예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어느 정도 갖춰졌지만 가난하지도 부자도 아닌 다수의 젊은 층이 갈 곳을 잃은 셈이죠.
 

서울 강동구에 지어질 한 아파트의 견본주택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미 이 사회는 50~60대 집주인과 20~30대 세입자로 철저히 분리돼 있습니다. 갈등이 불가피한 구조죠. 물론 기성세대도 집을 둘러싼 2030의 불만을 모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아들딸이기도 하니까요. 억지로 모른 척했을 뿐입니다. 그들로서도 유일한 자산인 집 한 채의 가치를 지켜야 했거든요.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죠.  
 
어찌 됐건 서른 살 청년이 아등바등 푼돈까지 모아도 쉰이 넘어서야 집 한 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정상으로 볼 순 없습니다.
 
집값은 결국 수요에 달려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 가격을 지탱하려면 20~30대의 소득구조가 지금보다 건실해져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부동산 정책도 소득 증가만 못 합니다. 제값 받고 질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는 게 첫 번째입니다. 또한 지출, 특히 보육비·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고 조금이라도 더 저축할 수 있게 배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빚이 아닌 자기 돈으로 집을 살 수 있고, 그래야 부모의 자산도 지킬 수 있는 겁니다.
 
세부적으로는 좀 더 공격적인 지원책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극단적이면 극약처방을 써야 효과를 봅니다. 전세대출 한도를 늘리고, 금리를 우대하는 정도론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신혼부부에게 아파트를 나눠주자’와 같은 아이디어를 미친 소리로 치부해선 안 됩니다. 적어도 왜 안 되는지, 중재안은 없는지 검토는 해봐야죠. 책상 앞에 앉아서 숫자 몇 개 바꿔놓고 집을 둘러싼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대만 청년들은 자신의 나라를 ‘귀도(鬼島, 귀신이 사는 섬)’라 부른답니다. 취업난과 소득 정체, 비싼 집값 등 사정이 우리와 비슷해서인데 ‘헬조선’을 사는 한국 청년의 마음과 같겠죠. 귀신이든 지옥이든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앵그리 2030의 아우성, 듣고만 있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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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