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충북 제천 화재 진압·구조 과정에서 초기대응 부실을 지적받고 있는 제천소방서를 압수수색 했다. 부실한 화재진압을 이유로 소방당국이 압수수색을 받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소방본부를 비롯해 119상황실, 소방서 등 전방위 압수수색을 받은 소방당국은 침통한 분위기다.
충북경찰청 수사본부는 15일 수사관 24명을 충북소방본부와 소방종합상황실, 제천소방서에 보내 제천 화재 현장 대응에 관한 자료를 확보했다.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달 21일 화재로 29명이 숨진 제천 복합상가건물(노블 휘트니스 앤 스파)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과정에서 현장 상황을 제때 공유했는지, 대응 매뉴얼에 따른 현장 지휘관의 판단과 구조절차가 적절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이뤄졌다.
경찰 충북소방본부·상황실·제천소방서 압수수색
경찰 2층 진입 늦은이유 등 대응 매뉴얼 지켰는지 조사예정
소방당국 "지휘관 징계도 모자라 경찰 수사까지" 한숨
네티즌들 "소방관 죄인 취급안된다" vs "잘못 짚고 넘어가야"
소방합동조사단은 지난 11일 화재조사결과 발표에서 “2층에 사람이 많다”는 신고를 받은 119상황실이 무전교신 원칙을 무시한 채 휴대전화로 3차례 현장지휘관에게 구조요청을 보낸 사실을 지적했다. 제천소방서 화재조사관과 지휘조사팀장은 뒤늦게 도착한 구조대에게 이 사실을 전달하지 않아 20명이 숨진 2층 여자 목욕탕 인명수색이 지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소방당국의 상황 전파와 2층 진입 지연 이유, 무선 불통 이유 등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 규명을 경찰에 촉구했다. 경찰은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현장 지휘관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이나 직무 유기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를 검토할 예정이다.
제천 화재 참사 이후 큰 충격에 빠졌던 소방 대원들은 이번 압수수색에 침울한 반응을 보였다 이미 주요 지휘관들이 직위해제된 상황에서 경찰 수사까지 이뤄질 경우 소방활동이 위축될 거란 우려에서다. 앞서 소방청은 지휘 책임과 대응 부실, 상황관리 소홀 등의 책임을 물어 충북소방본부장을 직위해제했다. 충북도는 이날 제천소방서장과 충북소방본부상황실장 등 2명을 직위해제 했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마음이 괴롭다. 더이상 무슨 말을 하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천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 관계자는 “경찰 수사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 유구무언”이라고 했다. 현재 제천 화재 참사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대원 4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직원 32명은 전문의 상담에서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유족들이 소방초기 대응이 적절했는지 밝혀달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경찰에서 압수수색을 한 것으로 안다”며 “현장에서 더 잘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경찰 수사와 책임자 징계, 소방합동조사단 추가 조사가 이어지면서 직원 전체가 위축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열악한 장비와 인력, 출동 여건 등을 함께 살펴보지 않은 채 소방관들의 책임만 묻는다면 오히려 사기가 저하돼 현장활동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전날 화재 당일 최초 출동한 제천소방서 소속 소방관 6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어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제천소방서장 등 지휘관들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경찰관계자는 “아직 소방관 입건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며 “압수물을 분석해 입건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