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문 대통령의 신년사는 재계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문 대통령은 '재벌개혁'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감 몰아주기 해소, 지배구조 개선(순환출자), 주주 의결권 확대 등 구체적인 개혁 방안까지 언급했다. 기업 압박에 대한 강도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재벌 혼내주고 (회의에) 왔다"는 말로 논란을 일으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가 11일 유튜브에 공개한 '친절한 청와대, 갑질 그만 하도급 대책-김상조 위원장 편'에 출연해 '재벌저격수'라는 본인의 별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 얘기가 나온 지 30년 됐지만 실행이 안 된 건 모든 정부가 취임 6개월 이내에 몰아쳐야 개혁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본인은) 임기 내내 경제민주화를 지속 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길에서 만난 한 주부가 '치킨 값을 내려줘서 고맙다'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경제민주화가 국민 개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도록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5월 등장한 새 정부는 이후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을 잇따라 들고 나왔다. 미국 등의 움직임과는 달리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올렸다. 최저임금도 16.4%나 올렸다. 오는 7월 1일부터는 근로시간 단축도 본격 적용할 계획이다. 이런 분위기가 새해 들어서면 경제 살리기가 강조되면서 다소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의 메시지의 강도가 새해 들어서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자 기업들은 난감해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5대 그룹 고위 임원은 14일 새해 전망을 묻자 "(기업하기에) 부담은 커지고 숙제는 많아진다"며 "지난해보다 더 험난한 1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새 정부, 신년 들어서도 '재벌 개혁' 공세
재계 관계자 "올해가 더 힘들 것" 한숨
"투자·고용 늘릴 수 없는 정책 내놓고
늘리라고 압박하면 어떻게 동참하나"
한 경제단체의 관계자는 "정유라 승마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관련해 일부 기업은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며 "동계올림픽이 성공해야 한다는 데에는 재계도 이견이 있을 수 없겠으나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자발적으로 지원에 나설 분위기는 아니다"고 털어놨다.
재계의 속앓이가 깊어지는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동계·재계와 잇단 회동에 나선다. 15일 대한상의를 시작으로 닷새간 한국노총·경총·민노총·중소기업중앙회를 차례로 찾는다. 민주당은 '듣기 위해 간다'고 밝히고 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생산성 제고, 혁신성장 동력 방안 마련, 규제개혁 입법 등 산적한 민생현안을 위해 대타협의 열차를 출발시킬 것"이라며 "여당의 경청 행보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만남은 모두 발언만 공개한 뒤 비공개로 진행된다. 재계는 긴장한 채 여당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