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전쟁 벌이는 정부

중앙일보

입력 2018.01.12 01:33

수정 2018.01.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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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연 신년간담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방침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28일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법무부가 특별법 제정을 건의했지만 정부안을 확정하진 않았다.
 
박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거래소 폐쇄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는 “(특별법 제정에) 부처 간 이견이 없고 입법 중간 단계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암호화폐 거래가 투기·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해외 언론에 ‘김치 프리미엄(외국에 비해 한국에서 암호화폐가 더 비싼 값에 거래되는 현상)’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도 한국의 거래가 비정상적이란 평가가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기 “특별법 만들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할 것”
헌법소원 다툴 우려 … 청와대선 “확정 안됐다” 혼선

정부가 거래소 폐쇄를 공식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대표적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TC) 가격은 이날 정오 2100만원에서 1시간30분 만에 1740만원으로 18% 급락했다. 오후 들어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청와대와 관계부처들이 엇박자를 내면서다. 박 장관 발표 직후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 장관의 발언은 부처 간 조율된 것으로 서로 협의하면서 일하고 있다”고 힘을 보탰다. 그러나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박 장관의 발언은 확정된 사안이 아니며 각 부처의 논의와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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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청와대와도 조율을 거쳤다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등에서도 논의가 됐을 텐데, 그런 과정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1900만~2000만원 사이를 오갔다. 법무부는 오후 6시가 넘어 대변인실 명의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특별법은 추후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자연히 박 장관과 청와대 간의 혼선이 시장의 혼란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무법인 세종의 암호화폐 태스크포스(TF)팀 조정희(43) 변호사는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는 헌법의 기본 가치인 시장경제와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의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 조치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고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지난해 9월 암호화폐 거래소를 전면 폐쇄했지만 장외시장을 통한 거래는 다시 늘어나고 있다. 거래소 폐쇄 이후 급락했던 암호화폐 가격도 예전 수준을 회복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암호화폐 거래소 전면 폐지를 위한 특례법을 제정하려면 먼저 이 거래의 위법적 요소가 뭔지 명확히 해야 하는데 사적 거래와 자본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법률적 근거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