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부터 한·일 관계가 회복 불능이 되니 합의를 절대 물리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가 고심 끝에 현실적 선택을 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잘못된 합의를 뜯어고치겠다는 명분과 한·일 관계를 망칠 수 없다는 현실론이 뒤섞이는 바람에 앞뒤 안 맞는 미봉책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 처리가 그렇다. 정부는 일본 측 사과가 미흡하다며 우리 예산으로 10억 엔을 조성해 처리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받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발표 직후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의 아마추어적 대응으로 얻은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전문가들은 합의를 깰 때 생기는 부작용을 수없이 경고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과 강 장관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나 합의를 곧 깰 듯 처신했다. 일본의 감정은 나빠질 대로 나빠져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현 정부는 절차적 정당성과 명분에 집착해 기존 외교안보 현안들을 적폐로 몰아놓고 막상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자 서둘러 봉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을 상대로 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파문이나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외교갈등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 이런 일방적 대응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이제라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