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국 순회 공연의 첫 무대에서 조성진은 앞서가거나 과장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연주했다. ‘비창’ 소나타 2악장에서는 자칫 신파로 갈 수 있는 음악으로부터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우아한 느린 노래를 했다. 박자대로, 담백한 톤으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3악장에서는 좀 더 테크닉을 과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악보에 적힌대로 또박또박 연주했다. 소나타 30번에선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가 더 분명했다. 1악장에서는 마치 연습곡이라도 되는 듯 한음한음을 분명히 들려줬다. 이 곡 3악장의 후기 베토벤의 단순하지만 감상적인 주제 선율이 나온다. 조성진의 해석은 담담했다. 복잡하고 장대한 이야기가 끝나는 듯한 마지막 부분에서 주제가 반복될 때 마치 의미를 거의 두지 않은 듯 음악이 그대로 흘러가도록 뒀다. 작품의 마지막임을 강조하기 위해 느려지지도 않았고, 감정을 만들기 위해 푹빠져 노래하지도 않았다.
'생애 첫 전국 투어' 7일 부산에서 시작
정석대로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음색과 기술 면에서는 자유로움 과시
14일까지 전국 4개 도시 연주
연주는 해석의 문제를 떠나 미학의 주제로 넘어가 있었다. 조성진의 음색은 떠오르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악기와 공연장의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지만 피아노 소리를 조절하는 자유만큼은 분명히 드러났다. 들려야 할 멜로디는 효과적이고 깨끗하게 뻗어나왔고, 화음을 이루는 음들은 딱 알맞은 정도의 음량으로 각각 울려 탄탄하게 쌓였다. 드뷔시의 화음은 같은 마디 안에서도 각각 다른 뉘앙스로 변화했다. 어떤 소리는 공중에 떠 있었고, 그 다음 소리는 고무줄처럼 팽팽했고, 또 다른 소리는 묵직했다. 조성진이 가진 소리의 종류가 1년 전에 비해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음악 해석에서 본인의 강한 주장을 빼거나 가진 모든 재능을 보이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은 확신과 훈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실력이다. 조성진은 이번 독주회에서 피아노로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화려함의 정도를 원하는 만큼 세팅할 수 있고, 두터운 화음들 사이에서 뚫고 나와 청중이 집중할 수 있는 멜로디를 만들 수 있었다. 건반 다루는 기술이 늘어난 그는 그걸 과시하는 대신 음악 속으로 숨기는 편을 선택했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음악을 추구한다”는 본인의 말에 맞는 스타일이다.
다만 앙코르에서만큼은 절제도 거리두기도 없이 모든 것을 다 했다. 쇼팽 전주곡 17번에서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운 낭만적 해석을 선보였다. ‘영웅’ 폴로네이즈와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10번에서는 얼마나 빠르고 크게 칠 수 있는지, 즉 마음 먹으면 얼마나 기교적이 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인지를 과시하다시피 연주했다. 드뷔시 ‘골리웍의 케이크 워크’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망가지는 음악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슈베르트 즉흥곡 D.899의 2번엔 템포를 변화시키면서 연주하는 과감함을 슬쩍 섞었다. 베토벤 소나타, 드뷔시, 쇼팽 소나타로 이어지는 ‘정찬’에서 기교적이고 과시적인 것을 절제해 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앙코르 무대였다.
부산=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