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새정치’ 안철수에게 ‘정치 9단’ 박지원은 상왕(上王)이었고, 스스로 ‘헌정치’임을 인정했던 박지원에게 안철수의 새정치는 보톡스였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권력이면서 보완재였으나 대선 패배 이후 필요 수명이 다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게 지금 국민의당 내전의 본질일 수 있다. 박지원은 안철수-유승민 동맹을 “야합”이라고 비난한다. 하긴 야당(국민의당+바른정당)끼리 합치려 하니 야합(野合)은 야합이다.
박지원은 여기에 ‘보수대야합’이란 프레임까지 씌웠다. 콧대 높은 유승민을 붙잡아야 하는 안철수가 대북정책에 있어 완전히 오른쪽에 있는 바른정당 스탠스를 더 왼쪽으로 바꿔놓기가 어려움을 알고 찌르는 급소 공략이다. “초딩” “밴댕이 속” 같은 인신공격은 보너스다.
안철수도 맷집이 세졌다. 그는 박지원같이 말폭탄은 던지지 않는다. ‘안-유 동맹’에 대한 전 당원 투표를 밀어붙인 것처럼 행동으로 응수한다. 이제 1월 말이나 2월 초께 전당대회를 소집해 아예 통합 논의에 대못을 박아버리려 한다. 말로는 통합 반대파를 “설득하겠다”고 하지만 길 떠나도록 봇짐 내어주면서 앉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실상 “나가는 문은 저쪽”이라고 박지원 등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도 길잡이는 한 마리다. 그런데 두 리더가 서로 정반대로 잡아끄니 올해 여의도에 두 개의 신당이 생기려 한다. 안철수의 ‘통합신당’이 하나, 박지원 등 호남 세력의 ‘개혁신당’이 다른 하나다. 뭐가 통합이고, 뭐가 개혁이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의 선거의 법칙이다.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계개편이 일어난다는 것. 당장 국민의당이 2016년 총선, 바른정당이 2017년 대선 정계개편의 산물이다.
잘 걸어가다가도 말(馬)만 보면 타고 가자 한다더니, 지방선거가 있어서인지 멀쩡하던 정당까지 신당 열차에 올라타려 한다. 지각변동이 있으면 굉음이 크다. 그러니 지금의 잡음도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신당이 나랑 무슨 상관인지 모를 국민에게는 아니다. 2016, 2017년 만든 신당을 허물고 또 만든 당이 신당인지 헌당인지, 추진 세력은 명분과 비전을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군사를 쓸 줄 아는 장수는 총소리보다 북소리를 먼저 울린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신당 게임에는 총소리만 있다.
강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