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02년 이후 지금까지 출산율이 가장 낮은 대표적인 국가가 돼 버렸다. 아직 공식 집계가 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출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의 수)은 1.05 혹은 1.06이 될 터인데, 이는 그동안 많은 인구학자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왔던 수준이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는 약 126조원에 달하는 저출산 대응 예산을 집행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상황이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년간 보육환경 개선하면
저출산 해결된다는 집단사고 실패
이번에도 인구 전문가는 없이
여성·생활 중심 집단사고 빠지면
자칫 골든 타임은 허비되고 말 것
보육 중심의 저출산 대응 전략을 마련한 것은 2006년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였다. 이 위원회 위원들과 실제 정책을 개발하는 실무위원들도 보육환경이 개선되면 저출산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위원 개인적으로는 다른 의견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가 대세인 분위기에서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집단의 조화를 깨는 일이었다. 집단사고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저출산 대응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데 있어 이러한 분위기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변화가 없었다. 집단사고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돼 온 보육 중심의 저출산 대응전략은 성공의 여지조차 보이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도 집단사고가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여 걱정이다. 인구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여성과 생활이 저출산 현상보다 더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 여지가 매우 크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옳은 의제들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저출산 정책 기조로 선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마치 이전 위원회에서 보육이 저출산 해결을 위한 모든 것이라고 결정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원들끼리는 이럴 수도 있겠다. “저출산이 왜 문제죠? 어차피 저출산은 해결이 어렵죠. 그러니 여성과 생활을 강조하는 게 나아요”.
위원장인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골든 타임이라고 강조했다. 만일 위원회에 집단사고가 등장해 버리면 이 골든 타임은 그냥 허비되고 말 것이다. 국민들은 저출산에 냉소적이어도 된다. 하지만 국가는 집단사고를 통해 저출산에 냉소적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 새로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대한 필자의 걱정이 지나친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