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행사 취재겸 백말띠들의 고사를 지켜보고 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다가와 “친구야, 어디서 왔어? 춥지?”하며 손에 핫팩을 쥐여줬다. 이 따뜻한 백말띠 청년들은 페이스북 커뮤니티 ‘구공백말띠’ 회원들이었다. 팔로워 수만 5만5000명인 구공백말띠 커뮤니티 내에서는 90년생 말띠면 그가 어느 대학을 나왔든, 어떤 직장을 다니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2014년 말띠 해에 처음 커뮤니티가 문을 연 이후 이들은 운동회·수련회·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우정을 쌓아나가고 있다. 그저 같은 연도에 태어났고 학창시절 ‘피카츄 돈까스’를 즐겨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들이 친구가 될 이유는 충분했다.
그 단순함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웠다. 20대 마지막·아홉수·N포세대 등 사회가 덧씌운 삶의 무게를 백말띠들은 그들만의 ‘조건 없는 우정’으로 풀어가고 있었다. “요즘 청년들은 다들 자기 살길 찾아 경쟁하기 바쁘다는데 오히려 뭉칠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내가 본 바로는 아니다. 이들은 대단하지 않다. 대부분 더 좋은 곳에 취업하고, 더 많은 돈을 벌거나, 더 안정된 삶을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 청년들이다. 서로 보듬으며 연대하는 것도 결국 스스로 더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애초에 청년들을 ‘무한 경쟁세대’니 ‘혼밥족’이니 규정짓는 행위 자체가 기성세대의 오만 아닐까. 어느 고사장 같은 데서 마주치지 않는 한 이들은 같은 시대를 사는 동료일 뿐, 서로를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비교적 젊은 사회부 기자인 내게 종종 선배들은 “요새 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느냐”고 묻는다. “요새 애들은 OO한다면서?” 은근슬쩍 질문 안에 자신이 규정지어 놓은 ‘요새 애들’에 대한 이미지를 담기도 한다. 그런 선배들에게 구공백말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누군가에겐 꽤나 생소할 이들의 별난 연대를 말이다.
홍상지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