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논설위원이 간다] 安 “대표직 물러난다, 현역 의원 이탈자 아마 없을 것”

중앙일보

입력 2018.01.03 01:00

수정 2018.01.0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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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정치 속으로
광야에 선 안철수의 새해맞이
 

국민의당 당사에서 열린 신년 단배식에 참석한 안철수 대표. [오종택 기자]

찬성이 압도적이었던 전 당원 투표 결과에 따라 국민의당은 결국 통합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진짜 통합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당은 두 동강 난 채 내전 상태에 돌입한 지 오래다. 통합 반대파는 23%란 낮은 투표율을 들어 “안 대표에 대한 불신임 표시”라고 오히려 반발 중이다. 당 소속 현역 의원 39명 중 18명이 이름을 올렸다. 안철수 대표는 광야에서 또다시 시험대에 섰다. 돌파냐 좌초냐의 마지막 승부로 시작한, 그의 바빴지만 고민 많은 새해 첫날을 기상부터 12시간 함께 했다.

통합 자체엔 반대 의원 적고
막상 탈당하겠다는 경우 없어

이달 중 전대 열어 통합 마무리
통합신당 지지율 2위 올라선다

통합 마무리되는 이달 말 사퇴
서울시장 출마도 배제는 안 해

서울 상계동 수락산역 인근 안철수 대표의 40평 아파트 문은 여러 차례 요청에도 열리지 않았다. ‘가족들이 자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전 7시 매서운 칼바람 속에 안 대표는 검은 가방을 들고 아파트 로비에 나타났다. 가방 속엔 차량 이동 때 꼭 읽는다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들어있었다. 새해 첫 아침이었지만 지지자도 반대자도, 기자도 볼 수 없는 그의 집 주변은 적막했다.


과거엔 정치부 기자들이 유력 정치인 집을 아침 저녁으로 찾았다. 식사를 함께하며 뉴스를 주고받는 일상이었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김윤환·이기택·신상우 의원 등을 탈락시킨 공천 파동으로 흔들렸다. 시위대로 몸살을 앓던 이회창 총재는 사위 집 등을 전전하며 한동안 피신했고 그때부터 기자들의 정치인 자택 취재 관행은 사라졌다. 당시 강한 보안이 걸린 그의 소재 파악은 힘들었다. 어렵사리 만났던 이 총재 손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들려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당 지지율이 2등만 된다면
 

새해맞이 관악산 산행 모습. [연합뉴스]

당이 두 동강 날듯한 분위기가 그때와 닮았다. 전국 선거를 앞뒀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 총재는 당시 총선을 기점으로 영남당으로 더욱 달려갔다. ‘대구는 정치적 고향’이라며 영남 민심에 호소했다. 안 대표는 호남 당을 벗어나겠다는 거다. 글쎄다. 지역 기반 없는 제3당은 예외 없이 소멸한 게 대한민국 정당사다. 그래서 그의 흰색 카니발에 함께 오르자마자 ‘통합 시너지란 건 환상 아닌가’라고 물었다. 안 대표는 “국민적 기대를 몸으로 느낀다”며 “통합하면 지지율 2위로 올라선다는 게 각종 여론조사의 종합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1등을 뽑자는 게 선거다. 2·3위 후보가 뭉쳐 1위 후보를 제치거나 1·3위 후보가 짬짜미로 안정적인 1위를 만드는 게 선거연대의 동력이다. 3·4위 당 연대로 내년 지방선거에서 얼마나 큰 바람을 만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다 지역 기반 외에도 안보·대북정책이 상이한 두 당이다. 통합의 명분이 높지 않다. 통합 반대파는 “보수 야합” “영남 패권에 투항”이라거나 “지방선거용 정치 공학”이라고 치고 나왔다. 감동이 적어 통합 파괴력이 미미할 거란 얘기다.
 
7시 50분. 서강대교를 건너는 차창 밖으론 새해 해돋이가 시작됐다. 대선을 치른 지난 한 해 그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솟아오르는 해를 보며 “올 연말엔 2위 당으로 저 해를 봤으면…”이라고 되뇌더니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 끝난 뒤 당이 사라집니다. 살자고 하는 건데, 통합 반대라면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도 내놔야 할 것 아닙니까?” 적폐로 몰아대는 집권당과 정치보복으로 맞서는 자유한국당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는 건 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양당 구도에선 설사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진다 해도 반사이익이 3당의 몫은 아니다. 어쨌든 몸집을 불려 2등으로 올라서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9단 머리 위에 있는 민심
 

고양시 한 아파트 단지 경로당에서 세배하는 안 대표. [뉴시스]

반대파 선두엔 박지원 전 대표가 있다. 박 전대표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순간 판단이 뛰어난 진짜 정치 9단”이라고 평가했다.
 
정치 9단이 말리는 길을 왜 갑니까.
“그런데 9단이라는 게 민심의 바다에 떠 있는 종이배 아닙니까. 민심은 정치인 머리 꼭대기에 있습니다.”
 
당직자들과 떡국 식사를 마친 뒤 당 단배식을 주재했다. 참석 의원은 10명에 불과했다. 박주선 국회 부의장은 “초라한 단배식”이라며 “통합론과 반통합론으로 나뉜 게 수치스럽다. 협치가 당내서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수가 터졌다. 같은 시간 대다수 의원들은 호남을 돌며 ‘통합 반대’ ‘안철수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안 대표는 “무슨 일이든 술술 풀리는 무술년 되세요”란 덕담과 너스레로 다가섰다. 곧이어 경로당에선 넙죽 엎드려 큰 절을 했다. “처음 볼 땐 분재 같았는데” “너무나 나약하고 얌전하던 안 대표가 어느새…”란 말이 당에서도 경로당에서도 나왔다.
 
박지원 전 대표에게 물었다.
 
단배식엔 왜 참석하지 않았나.
“참석 필요성을 못 느끼는 데다 아내가 아파 병원에 있다.”
 
통합하면 탈당하나.
“자기들이 나가야지 내가 왜 나가나. 그 전에 전당대회를 열 수 없을 거다.”
 
각목 전대가 된다는 뜻인가.
“이상돈 전당대회 의장이 전대 소집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안 대표는 어떻게든 설득한다는 입장인데.
“싫은 사람은 절대 연락 안 하는 게 안 대표고, 설사 연락이 있어도 달라질 건 없다.”
 
그 얘기를 들은 안 대표 반응이 싱겁다. “며칠 전 병문안 가서 박 전 대표 만났는데요?”
 
임계치 바짝 다가선 당 원심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통합에 반발하는 당내 원심력은 임계치에 다가섰다. 합당 의결을 위한 전당대회로 가는 길엔 파고가 더 높고 거칠어질 태세다. 현 상황이면 통합한다 해도 극심한 후유증이 불가피하다. 핵심은 통합을 거부하는 호남파 3인, 박지원·천정배·정동영 의원 처리 문제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세 사람의 강성 반대파는 압박해 통합 전에 털어냈으면 한다”고 전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의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천정배 의원을 포함해 “당을 나갈 이유가 없다”는 게 세 사람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게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 쉽지 않다. 의원들이 대략 반반으로 갈렸지만 거기엔 통합파든 반대파든 탈당 시 의원 자격이 박탈되는 비례대표가 포함돼 있다. 내년 지방선거는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신당 창당과 선거 준비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 때문에 내전이 ‘밀어내기’ 양상으로 바뀔 거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1970년대식 각목 전당대회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통합파가 공개한 통합 반대파의 문자 메시지엔 ‘50cm 정도의 각목을 준비해 당사에 집결하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럴 경우 통합 효과는 당연히 마이너스로 간다. 안 대표는 부인했다. “박 전대표의 반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끝까지 설득하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했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안 대표가 통합 반대파를 그대로 안고선 진정한 통합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미 ‘한 지붕 두 가족’이다. 통합하면 함께 살아야 할 또 다른 가족이 있다. 그러면 진퇴양난의 ‘한 지붕 세 가족’이 된다.
 
바른정당 두세명 이탈이 최대치
 
현충원 참배 땐 세 가족들이 서로 뒤엉켰다. 유승민 대표에게 세 사람이 당에 남으면 어찌되냐고 물었다. 그는 “그리되면 골치 아픈데…”라며 답을 잇지 못했다. 시선은 하늘을 향했다. 국민의당은 1월 말 전당대회를 준비 중이다. 다음 달 동계올림픽 전 매듭짓고 설 연휴 땐 이슈를 만들자는 계획이다. 안 대표는 세 사람을 포함해 반대파 의원들을 1대 1로 만날 계획이다.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를 새해 4자성어로 내놨다.
 
현실적으로 막상 합당이 성사돼 의원 50명의 통합신당이 탄생하면 누구도 탈당이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안 대표의 전망이었다. 전 당원 투표에서 통합 찬성률이 압도적인 만큼 국민의당에선 온건 반대파도 찬성으로 돌아설 거라고 했다. 안 대표는 “속내야 알 수 없지만 바른정당 두세 명 이탈이 최대 숫자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럴 수도 있다. 통합파든 반대파든 선거 승리를 위해선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어차피 한 자릿수 지지율론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를 수 없다. 그리고 양당 통합은 이제 기정사실이 됐다. 그러자면 합류 명분이 필요하다. 안 대표는 백의종군을 내세웠다.
 
다당제 못 지키면 정치 떠날 것
 
오후 3시 관악산을 오르며 물었다.
 
대표직에선 언제 물러나나.
“이달 말쯤 통합이 마무리되면 2선 후퇴한다.”
 
서울시장에 도전할 생각인가.
“뭘 하겠다고 나서진 않지만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한다.”
 
출마 검토 중이란 뜻인가.
“현재는 통합에 집중하고 있다. 다당제가 새정치고 그걸 지킬 수 없다면 정치를 떠나겠다”
 
청년 당원들과 막걸리 대화를 마치고 돌아설 땐 해가 진 뒤였다. 새해 첫날 동선이 컸다. 상계동 자택→여의도 당사 단배식→고양시 경로당 떡국 나눔 자원봉사→관악산 등산→신림동 막걸리 대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다. 그가 앞둔 길만큼이나 멀고 고단한 하루였다. 대선에 진 안철수·유승민 두 패장은 죽음의 계곡을 넘을 밧줄을 그렇게 서로에게서 찾고 있었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