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평창올림픽 개최 확정 이후 가장 기다렸던 건 공식 마스코트의 등장이다. 평창올림픽의 마스코트는 백호(白虎)를 형상화 한 ‘수호랑’이다. 이름에는 세계 평화와 출전 선수, 관중을 지켜준다는 의미와 강원도를 대표하는 정선아리랑이 섞였다. 지명공모를 통해 김씨가 혼자 창작했던 호돌이와 달리 수호랑은 약 5명의 디자인 전문가 그룹이 투입돼 제작했다.
88올림픽 때 토끼·진돗개 제치고 호랑이 선정
평창 올림픽에서도 두루미·까치 등보다 선호
“한국인의 정서 호랑이가 가장 잘 대변” 결론
“호랑이, 올림픽 계기로 한국 상징물 됐으면”
“바라던 대로 백호가 마스코트로 돼 흡족하네요. 3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수호랑은 우리 호돌이의 아들인 셈이네요.” 수호랑 봉제 인형을 받아 든 김씨의 말에 장 위원장이 “당대에 인기몰이를 했던 호돌이의 영향이 크다. 어떻게 하면 진화하고 성장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고 화답했다. 한 자리에 모인 호돌이·수호랑 아빠 넷의 수다는 1시간 30분간 이어졌다.
▶김현(이하 김)=호돌이가 세상에 나온 건 1983년이에요. 서울올림픽 개최를 5년 앞두고 나왔어요. 상징물을 두고 호랑이·토끼·진돗개가 경합을 벌였어요.
▶장인규(이하 장 분과장)=평창올림픽 마스코트 후보에도 진돗개가 있었어요. 저희 때는 선호도 조사가 2위로 나와 낙마했죠.
▶장동련(이하 장 위원장)=디자인 과정은 항상 다양한 안을 놓고 고민해요. 두루미, 까치, 곰, 심지어 하늘다람쥐도 후보에 올랐어요. 선호도 조사도 있었고, 치열한 토론 끝에 백호가 가장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이희곤(이하 이)=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한류라고 할 수 있어요. 한민족의 정서와 감정을 잘 표현하니까요. 처음에는 민화에 나오는 까치호랑이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수호랑은 그걸 현 시대에 맞게 변화한 형태인거죠.
▶김=서울올림픽조직위에서는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갖고 호랑이와 토끼를 최종안으로 올렸어요. 저도 들은 얘기지만, 당시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군부 독재시대다보니 맹수인 호랑이보다 토끼를 바라는 기류가 강했어요. 굉장히 조마조마 했답니다. 그런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딱 찍었대요. “토끼는 무슨 토끼, 호랑이!”하고요.
▶이=민화의 까치호랑이는 외국 사람들이 보기엔 생소해도 한국 국민들은 장애물 없이 받아들이잖아요. 그것을 좀 더 미니멀(minimal·작은)하고 현대화 된 형태로 보여줄 수 있으면 전 세계에도 공감할 디자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장 위원장=사실 서울올림픽 때도 진돗개가 검토됐었고, 이번에도 진돗개가 물망에 올랐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개니까 유력한 후보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코비’처럼 이미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차별화 측면에서 호랑이가 적합하다고 결론을 낸 거죠.
▶장 분과장=진돗개도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상징물이 될 수 있지만, 사실 그려놓고 보면 시바견 등 다른 나라의 토종견과 비슷해서 차별화 하기 힘들더라고요. 수호랑을 보고 ‘또 호랑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대다수의 국민 정서는 호랑이에 가깝고,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호랑이가 상징물이 될 가능성이 90%라고 봅니다.
▶김=이 대목이 중요해요. 호돌이와 수호랑을 비롯해서 모든 올림픽 마스코트의 저작권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갖고 있어요. 올림픽 폐막 이후에 마스코트 캐릭터를 더 지속·발전시키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호돌이처럼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캐릭터는 개최국이 나서서 IOC와 합의를 보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회가 끝나면 캐릭터가 더 폭 넓게 쓰이지 못하고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은 안타깝잖아요. 작은 아이디어지만, 역대 올림픽 마스코트를 망라하는 박물관을 한국에 유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 위원장=마스코트를 그대로 쓰기 어려우니, 호랑이라는 소재를 갖고 다양하게 확장시켜나가는 브랜드 디자인 사업을 이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해 보입니다. 현대적인 디자인 협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브랜드로 확장시키는 방법이 찾아보면 나올 겁니다.
▶김=호돌이가 당대엔 인기가 워낙 좋았으니까,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호돌이로 번 돈 다 어디에 쓰느냐”고 농담을 던져요. 그럼 제가 그러죠. “그 수입 내가 다 가졌으면 내가 여기서 소주를 먹고 있겠냐”고요. (웃음) 확실한 건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에요.
▶김=시대적인 상황이 많이 다르죠. 호돌이가 나왔을 때 한국에는 올림픽과 같은 큰 행사가 별로 없었어요. 오죽하면 ‘단군이래 가장 큰 행사’라는 말이 나왔겠어요. 온 나라가 떠들썩했죠. 호돌이에게는 다행이었어요. 정부는 물론이고 모든 민간기업까지 초점이 한 군데로 몰렸던 게 파급력이 컸던 이유입니다.
▶장 위원장=이유가 어째됐든 호돌이는 우리나라 디자인 역사의 큰 상징이에요. 서울올림픽의 호돌이는 한국의 경제적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면, 평창올림픽의 수호랑은 30년 후 또 다른 진화된 성장을 뜻한다고 봅니다. 호돌이가 한국 디자인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디자인계에서도 큰 애착을 갖고 있어요. 수호랑은 그를 이어서 제2의 세계화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서울올림픽 때는 온 국민이 호돌이 상품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탈·통장·스탬프 등등 종류도 엄청 났어요. 각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업체들이 최고 수준으로 호돌이를 상품화했어요. 특히 관급 수요가 많아서, 제품 개발도 가속화됐죠.
▶김=아, 호돌이 봉제 인형은 예외에요. 언뜻 보면 괜찮아보이지만, 사실 고치고 싶은 게 많아요. 그 당시에 이 인형이 나왔을 때 모양과 사이즈, 눈의 위치 등을 다 수정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여의치 않으면 제가 직접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그냥 이 디자인으로 넘어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죠.
▶장 위원장=지금과 같이 확장된 마케팅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면 소통·공감·참여라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수호랑을 발표하면서 고려한 것은 소통형 마스코트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대중들이 마스코트를 기념품 등 단순한 형태의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을 뛰어 넘어, 확장된 미디어 환경에서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연결고리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죠.
▶장 분과장=이번에 마스코트를 발표할 때 자문위원회에서 조직위에 당부한 게 있어요. 마스코트 발표와 함께 온라인과 모바일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일정 기간 무료로 제공하자고 했죠. 호돌이가 한국 디자인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 수호랑은 거기에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치를 더하려고 한 겁니다. 마스코트를 활용한 스토리가 담긴 영상 콘텐트를 제작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에요. 지난 30년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격변한 기술 환경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죠.
▶이=시행사의 입장에서는 사실 어려운 주문이었어요. 많은 동작을 표현해야 하는 이모티콘뿐만 아니라 3D, 인형, 피규어처럼 다양한 조형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가장 큰 임무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미디어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수호랑은 원소스 멀티유스(One-Source Multi-Use·하나의 원형 콘텐트를 다양한 장르로 변용해 부가가치를 극대화 하는 것)의 전형이라고 자평합니다. 사실 김현 선생님께서 디자인 말미에 자문을 해주셔서 더 완성도 높은 마스코트가 나왔어요. 색깔이나 형태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정확한 포인트를 잡아주는 ‘화룡점정’과 같은 자문이었습니다.
▶김=아이 참, 그럼 술 한 잔 사세요. (웃음) 디자인적으로 호돌이와 수호랑은 표현의 성격 면에서 30년 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여요. 디자인이 미니멀하고 심플하게 정리된 건 굉장히 칭찬하고 싶습니다.
▶김=이번에 전문 기업 공모할 때 우리(디자인파크)도 참여했는데 이 대표에게 밀렸어요. (웃음) 지금도 변함이 없는 건,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을 호랑이로 굳히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미국은 흰머리독수리, 러시아는 곰, 중국은 팬더처럼 각 국을 상징하는 동물은 국가 브랜드라는 큰 자산이 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예부터 호랑이 얘기를 듣고 자랐고, 호랑이와 관련된 민예품도 많아요. 수호랑 이후에도 호랑이를 소재로 한 상징물이나, 문화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해서 활용해야 합니다.
▶장 위원장=동의합니다. 한국에서 호랑이는 한 개인이 성장하면서 마음 속에 애착을 갖게 되는 소재죠. 호랑이를 국가 브랜드로 성장시키는 것은 한국인의 의지와 단결,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을 상징하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