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김민배(36)씨는 지난 9월 청천벽력(靑天霹靂) 같은 소식을 접했다. 2007년 간암 수술을 받아 완치됐던 아버지(62)가 간암 재발판정을 받아서다. 게다가 아버지가 모계(母系)수직 간염 보균자여서 더 이상의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형제, 2007년 암 완치된 아버지 간암 재발에 충격
아버지 모계수직 간염보균자...이식 수술만 가능
형제 "아버지에게 간 이식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
형 "형인 내가"... 동생 "애 없는 내가" 서로 자청
둘 모두 간 크기 작아...한 명만으로는 이식 안돼
형 45%, 동생 35% 떼어 내 아버지에게 이식성공
"아버지 빨리 회복"..."온가족 식사와 여행하고파"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평창겨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생 성환(34)씨가 제동을 걸어서다. 성환씨는 “아들 된 도리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형은 조카들이 있으니 내가 하겠다”면서 형을 만류했다. 자식이 없는 자기가 나서겠다는 것이다. 형 민배씨는 아들(7)과 딸(3) 등 1남 1녀를 둔 가장이다.
형 민배씨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 너야말로 평창 겨울 올림픽이 내년 2월에 개막하는데 수술로 인해 공백이 생기면 추후 너의 인생, 너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맞섰다. 성환씨는 지난해 11월 결혼한 신혼이다. 또 조직위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일을 하기 위해 계획인 중 상태다.
이렇게 형제의 아름다운 경쟁은 결론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간 이식 가능 검사를 받았는데 형제 모두 ‘이식 가능’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민배·성환 형제의 아내들도 ‘우리 남편이 해야 한다’고 맞섰다.
형제의 아름다운 경쟁에 반전이 일어났다. 형제의 간의 크기가 일반 성인들보다 조금 작아 한 사람의 것만으로는 이식이 불가능했다.
간을 이식할 때 이식하는 사람의 간 100% 중 65%만 이식이 가능하다. 최소한 35%는 남아 있어야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제 모두 65%를 떼어낼 경우 남은 간의 양이 27~28%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형제의 간을 조금씩 떼어 내는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형제는 이구동성으로 "차라리 잘됐다"며 수술대에 같이 오르기로 했다.
지난 19일 형제는 아버지와 함께 수술대에 올랐다. 각기 다른 두 명의 간을 한 명에게 이식하는 수술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 이들 부자 3명의 간이식 수술은 보통 일대일 수술보다 8시간이 더 걸려 22시간 만인 다음날 오전 6시가 돼서야 끝났다고 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형제의 아름다운 경쟁은 수술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형 민배씨의 간에서 45%, 동생 성환씨의 간에서 35%가 각각 떼어져 아버지에게 이식된 것이다.
수술 후 회복한 형제는 지난 28일 같이 퇴원했다. 아버지는 현재 병원에서 건강한 상태로 회복중이다.
31일 아버지 병문안 가는 길에 기자와 통화한 민배씨는 “수술이 끝난 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아버지가 쓰신 뜻밖의 메모를 받아 가슴이 짠했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가 눈을 뜨자마자 "스케이치북을 달라"고 해 드렸더니 '사랑한다. ♥’는 메모였다고 한다. 동생 성환씨도 나중에 메모를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했다.
형 민배씨는 “수술 전 보다 빨리 피곤해지고,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뿌듯하고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버지가 빨리 회복하셔서 건강하게 퇴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생 성환씨도 “아버지께서 잘 회복하고 계셔서 기쁘고 앞으로 가족 모두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퇴원하시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형 민배씨는 “식구 여덟명이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동생 성환씨는 “지난 여름에 다녀온 가족여행을 새해에 다시 한번 다녀오고 싶다”고 말했다.
용인=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