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사상 초유의 ‘장미 대선’으로 이어졌다. 5월 9일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식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는 협치와 소통, 탕평 인사도 약속했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과 ‘장미 대선’
협치와 소통, 탕평인사 약속 어디 갔나
삶의 질 높이는 정책, 포퓰리즘 경계해야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용적 분배정책을 펴고 있다. 격차를 해소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지만 성패를 예상하기 힘든 실험적인 정책이 쏟아졌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무원 증원 등이 대표적이다. 탈원전 정책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선거로 선택받은 정권이 자기 철학에 맞는 경제정책을 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책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아름다운 이상만 좇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다.
5년,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책을 정교하게 벼려야 한다. 주거·의료·교육 등 핵심 생계비를 줄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정책도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과 포퓰리즘 사이의 거리는 사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베네수엘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포퓰리즘 정책이야말로 단기적으로 국민 체감도가 가장 높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를 국정전략으로 내세웠지만 ‘세월호의 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9명이 사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를 비롯해 포항 지진, 낚싯배 전복 사고, 이대목동병원 미숙아 집단 사망, 잇단 타워크레인 붕괴 등 대형 사고가 꼬리를 물었다. 세월호 교훈은커녕 우리 사회에 안전과 관련한 의식과 시스템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나라 밖도 숨가쁘게 돌아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취임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선포했고, 10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오쩌둥 반열에 오르는 절대권력을 틀어쥐고 집권 2기를 시작했다. 이 와중에 북한 김정은은 핵폭주를 이어갔다. 미국 워싱턴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 대북 선제타격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미국, 대북 압박에 미온적인 중국 사이에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 간다. 2년 전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이 다시 불거지면서 한·일 관계 역시 최악의 고비를 맞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로 비롯된 중국과의 갈등도 일시 봉합됐을 뿐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긴장은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한 ICBM을 완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봄쯤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호는 태풍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 위에 외로운 조각배처럼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다.
하루 뒤면 2017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지만 과거는 그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문재 시인은 ‘소금창고’라는 시에서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 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고 썼다. 새해에는 올해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을 다시 부여잡고 힘을 다해 풀어야 한다. 나라와 국민 모두의 운명이 걸린 난제들이다. 저무는 ‘붉은 닭의 해’를 지켜보며 우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다. 판도라 상자가 열렸을 때 죽음과 병, 질투와 증오 같은 온갖 해악이 뛰쳐나왔다. 하지만 맨 마지막에 ‘희망’이 남아 있었다. 다가오는 2018년 무술년(戊戌年) ‘황금 개의 해’를 희망을 부여잡고 헤쳐나가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