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까다로운 동물 공항 수속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3층 중앙에 위치한 ‘동물·식물 수출검역실’. 지난 19일 반려 고양이 ‘오레오’가 난생처음 이곳을 찾았다. 한국에서 8개월 전 태어난 오레오의 주인은 중국 옌지(延吉) 출신 유학생 조안기(20)양이다. 방학을 맞아 오레오를 데리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조양은 “목덜미에 마이크로칩이 삽입돼 있지 않다”는 민경란 검역관(수의주사보)의 말에 “고양이는 중국에 갔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칩을 장착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중국은 마이크로칩(인식표)이 없어도 반려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지만 한국 입국 시에는 칩 장착이 필수다.
예방 접종증명서도 있어야 통과
9마리 넘으면 사전에 꼭 신고해야
동물 동반 땐 3시간 전 검역실 찾길
호주·일본 등 섬 지역 조건 까다로워
중국·동남아 일부는 칩 없어도 입국
닭 등 일부 조류는 기내 탑승 제한
반려견·반려묘와 함께 출국을 계획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해당 국가의 입국 조건을 정확히 확인하는 일이다. 민 검역관은 “상대국 입국 요건을 확인하기 위한 전화가 하루에 100여 통 이상 걸려 온다”고 했다. 개와 고양이의 경우 주요국들은 대부분 마이크로칩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날 검역실 한쪽에는 호주로 출국하려다 마이크로칩이 없어 계류시설로 가게 된 검은색 푸들 한 마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주·뉴질랜드·일본 등 섬 지역은 고립된 지형 특성상 동물 입국 조건이 대륙보다 까다로운 편이다. 반면에 중국이나 동남아 일부 지역은 마이크로칩 없이도 입국이 가능하다.
국내 출국 절차를 밟는 데는 길어야 15분가량이 걸린다. 다만 오전 6~7시와 오후 5~6시에는 검역을 받으려는 사람이 10여 명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점을 기억하자. 조양처럼 출국 최소 3시간 전에 검역실을 찾으면 안전하다. 검역관은 품종·성별·나이 등이 서류에 기재된 사항과 일치하는지 개체 확인을 하고, 마이크로칩 판독기로 번호도 체크한다. 검역실을 찾는 동물은 대부분이 개나 고양이고 토끼도 간혹 이곳을 찾는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맹견류나 병아리, 닭 등 일부 조류는 기내 탑승이 제한된다.
검역본부는 당연히 출국보다 입국에 더 신경을 쓴다. 외국에 머물던 반려동물이 국내에 새로운 질병을 가지고 들어오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역은 ‘제2의 국방’으로 불린다. 해외에서 악성 가축전염병(고병원성AI,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이나 병해충(오리엔탈과 실파리, 불개미 등)이 유입되면 한국이 청정국 지위를 잃는 것은 물론 국내 농가가 피해를 본다. 사태가 악화하면 국민 보건이나 먹거리 산업이 전방위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검역본부가 전국 6개 지역본부 중 하나를 인천공항에 24시간 근무 체계로 가동하는 이유다.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입국할 때는 수출국 정부 기관이 증명한 검역증명서가 필수다. 유럽연합(EU) 국가에서 오는 경우 반려동물 여권(pet passport)으로 대체할 수 있다. 마이크로칩을 이식한 동물만 데리고 들어올 수 있고 증명서에는 마이크로칩 번호가 반드시 기재돼야 한다. 생후 90일이 지난 개는 광견병 항체 검사를 한 뒤 검사 결과, 검사 일자, 검사 기관 및 혈액 채취 일자가 포함된 증명서를 구비한다. 아홉 마리까지 사전신고 없이 한 번에 입국이 가능하지만 이보다 많을 때는 사전신고를 거쳐야 한다.
개·고양이 외 기타 동물도 상대국 정부기관이 증명한 검역증명서를 구비하면 입국 절차가 대동소이하다. 다만 조류의 경우 농식품부 고시에 따라 수입금지 국가로 지정된 곳에서는 아예 데리고 들어올 수 없다. 토끼·햄스터·패럿 같은 동물들은 검역증명서가 있더라도 계류장을 반드시 들러야 한다. 검역관이 5일간 상태를 지켜본 뒤 이상이 없다고 판단하면 방출을 허용한다. 살아있는 소, 돼지, 말 등은 휴대품 검역이 아닌 화물검역을 받는다. 비행기 화물칸에 검역관이 직접 탑승해 별도 검역을 한다.
살아 있는 생물을 신고하지 않고 위탁 수화물로 부치거나 기내에 숨겨 들어오는 경우는 없을까. 몰래 입국을 시도하면 X선 검역 과정에서 십중팔구 적발된다. 김명수 휴대품 검역과 기술서기관은 “간혹 고가의 사슴벌레 등 곤충류를 휴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전에 반드시 신고해야 불필요한 마찰과 피해를 피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규정을 어길 경우 불가피하게 반송·폐기 처분을 받을 수 있다.
X선 검사를 피했더라도 검역탐지견의 후각까지 피하기는 어렵다. 현재 인천공항에서는 총 16마리의 검역탐지견이 활동하고 있다. 중국·베트남·몽골·러시아 등 검역 위반 빈도가 높은 17개국 47개 노선이 주 대상이다. 입국자가 동식물을 포함한 수입금지 물품을 숨겨 들어오면 탐지견은 이를 냄새만으로 적발해 낼 수 있다. 살아 있는 생물뿐 아니라 육포·망고·생고기·씨앗 등 반입금지 품목도 찾아낸다. 김 서기관은 “인천공항에서 적발해 폐기하는 검역 압수 물품이 매주 약 5t 분량에 달한다”고 전했다.
[S BOX] 대통령 선물도 예외 없어, 반입금지 과일·육포 등은 폐기
당시 검역을 직접 진행한 관계자는 “박스 안에 국내 반입 금지 물품인 과실과 육가공품이 다량 포함돼 있어 절차에 따라 대부분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말린 과일과 소고기 성분이 없는 육포 등 조건을 충족한 선물 3상자 분량만 검역을 통과해 서울시에 전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중동 지역을 방문하고 귀국길에 가져온 과일을 검역본부에 자진 제출한 적이 있다. 대통령 전용기의 경우 검역본부 직원이 경기도 성남 소재 서울공항에 나가 따로 검역을 한다.
조병익 인천공항 휴대품검역과장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 사회지도층의 경우 문제 소지를 막기 위해 오히려 사전 신고를 철저히 하는 경우가 많아 검역관과의 마찰은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며 “생과일인 망고나 소고기 육포 등을 소지했다면 미리 신고해야 출국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