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재봉 지음, 아산서원
‘한국사람’이란 호칭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건 1897년 12월 2일자 독립신문에서다. 그 해 10월 12일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조선사람’을 대신할 호칭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1919년 ‘3·1 독립선언서’에 다시 ‘조선인’이란 호칭이 등장하는 것(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처럼 널리 통용되는 호칭이 아니었다.
1910년 일제에 나라 뺏긴 백성들
새로운 대안 찾아 뿌리부터 고민
친중·친일·친미·친소·민족파 등
해방 이후 전개된 새 인간형 분석
1910년 조선이 망했을 때 조선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공유했지만 조선왕조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나라를 되찾는다면 조선왕조 대신 어떤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세울 것인가가 그들의 고민이었다. 이들은 “빼앗긴 조선반도를 뒤로 하고 전세계로 흩어져 새로운 이념과 사상, 정치체제를 공부하고 새로운 종교로 개종하면서” 조선사람을 대체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지은이는 이들이 찾아낸 대안을 다섯 가지로 나누고 있다. 친중위정척사파와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그리고 인종적 민족주의파가 그것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이 다섯 가지 대안은 동시에 한반도로 몰려든다. 하지만 어느 것이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는 바탕이 될 것인지에 대해 합의를 이룰 수 없었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한국사람 만들기』는 이 다섯 가지 인간형의 역사적 뿌리와 정치적, 사상적 배경을 끌로 파듯 상세히 추적한다. 지난달 출간된 1권에서는 조선사람의 정체성과 친중위정척사파의 시대적·사상적 계보를 쫓고, 이달 나온 2권에서는 친일개화파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되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부터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내년부터 차례로 나올 3, 4, 5권은 각각 친미기독교파와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의 계보학을 다루게 된다.
한국사람의 정체성이란 이 다섯 가지 담론의 틀로만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영원불변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람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정치·지정학·이념적 요소들이 엮어내는 의미망을 보다 잘 이해함으로써 더욱 한국적이며 더욱 바람직한 한국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지은이는 주장하고 있다. 한국사람 계보학이 갖는 가치이자 의의라는 것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cielble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