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서 실종된 고준희(5)양을 둘러싼 가족들의 말이 대부분 거짓일 공산이 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준희양의 친부 고모(36)씨와 고씨의 내연녀 이모(35)씨, 이씨의 친모 김모(61·여)씨는 실종 신고 전 모두 비슷한 시기에 전주의 같은 대리점에서 휴대전화를 바꿨다. 본인들에게 불리한 질문에는 아예 답변을 회피하거나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닌 '가족에 의한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고준희양 실종 사건'을 수사 중인 전주 덕진경찰서 김영근 수사과장은 26일 오전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준희양의 친부 고씨는 4월 말, (고씨의) 내연녀 어머니 김씨는 5월 초에 아이를 (친부와 내연녀 모자가 살던) 완주군 봉동읍에서 (내연녀 어머니가 사는) 전주로 데려왔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이를 본 목격자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7월 초 (전주시 인후동) 집 안에서 준희양을 봤다'는 이웃 주민의 목격담도 여러 정황상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경찰에 따르면 목격자는 내연녀 어머니 김씨가 처음 준희양을 데리고 산 것으로 알려진 전주시 인후동 월셋집 같은 층에 살던 '세대원'이다. 김영근 과장은 "(사건 관계인인 김씨에 의한) 목격자 진술의 오염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단순 실종 아닌 범죄 무게 두고 수사
준희양 덮던 이불·베개선 DNA 발견 안 돼
이삿짐센터 직원 "여자아이 못 봤다" 진술
신고 전 바꾼 휴대폰이 사건 풀 '스모킹건'
경찰이 이날 공개한 감식 결과는 "11월 16일 김씨 집에서 딸아이(준희양)를 봤다"는 친부 고씨의 진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때문에 경찰은 준희양의 실종 시점을 아이의 친부와 내연녀 모녀가 주장하는 '11월 18일' 훨씬 이전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동안 김씨는 "(지난달 18일) 딸(이씨)이 사위(고양의 친부)와 심하게 싸우고 '더는 같이 못 살겠다'며 자기를 데리러 오라고 해서 내 차를 몰고 나갔다 집에 오니 아이(준희양)가 없어졌다"고 주장해 왔다. 이씨도 "부부싸움 후 남편(고씨)이 홧김에 아이를 데려간 줄 알았다"며 실종 신고를 20일 뒤인 지난 8일에야 했다.
김씨는 "지난 8월 30일 전주시 인후동 주택에서 우아동 빌라로 이사했다"고 했지만, 당시 김씨의 이사를 도운 이삿짐센터 직원은 경찰에서 "여자아이(준희양)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친부 고씨는 "이사할 때 준희는 내 차 안에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고 경찰 측은 전했다. 준희양이 맨 처음 김씨와 단둘이 지낸 것으로 알려진 전주시 인후동 집에서도 준희양의 DNA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22일 친부 고씨 자택 등 4곳에서 압수된 휴대전화들은 당초 경찰이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해 임의로 확보한 전화와 다른 것들이어서 미궁에 빠진 이번 사건을 해결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주목된다. 경찰에 따르면 친부 고씨는 지난 10월 31일, 내연녀 이씨와 이씨 아들(6)은 지난달(11월) 14일, 이씨 어머니 김씨는 같은 달(11월) 29일 각각 다른 통신사로 바꿔 휴대전화를 개통했다고 한다. 기기 비용 등은 친부와 내연녀가 따로 낸 것으로 조사됐다.
준희양 실종 사건을 두고 가족에 의한 유기나 타살까지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경찰은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14일 만인 지난 22일에야 준희양을 집에 혼자 내버려둔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김씨만 불구속 입건했다. 정작 준희양과 제일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경찰의 거짓말 탐지기 재조사 및 법최면 검사 요구를 거부하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친부 고씨와 내연녀 이씨는 입건조차 안 했다.
김 과장은 "수사 초기엔 아동이 스스로 나가서 실종됐을 가능성, 외부인이나 관계자에 의한 범행 가능성 등을 모두 열어 두고 수색과 수사를 실시했다"며 "하지만 3월 이후 (준희양이) 유치원에 다니지 않고 병원 진료 기록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범죄에 의한 실종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실종 시점을 (11월 18일보다) 광범위하게 잡고,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