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상구 안에서 열 수 있었는데 목욕 바구니에 막혀

중앙일보

입력 2017.12.24 13:53

수정 2017.12.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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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 주위를 22일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제천시 복합상가 건물 2층에서 숨진 20명은 비상구를 찾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비상구는 3주 전쯤부터 바깥에서는 잠겨 있었지만, 안에서는 열 수 있는 상태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여자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다 화재 초기에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 A씨는 “최근에 건물 주인이 비상구를 잠가 놓아 밖에선 열 수 없었다”고 24일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안에서는 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상구 문은 안쪽에서 잠긴 상태여서 손잡이 중앙에 달려 있는 돌출 부위를 90도 돌리면 잠금 장치가 해제되도록 돼 있었다는 것이다. A씨는 지난 10월 이 건물이 리모델링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열면서부터 세신사로 일했다.  

수납장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는 2층 여자 목욕탕의 비상구 근처 구조.

A씨는 화재 당시 희생자들이 비상구만 찾았으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숨진 이들은 목욕용품으로 거의 가려져 있는 비상구의 위치를 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이 비상구 쪽으로 갔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비상구로 가는 길은 목욕 바구니들로 꽉 찬 선반들이 상당 부분 막고 있었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데, 화재 이후 찍은 사진의 목욕 바구니들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중앙출입구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화재가 난 후 2층 비상구를 밖에서 연 모습. 통로가 선반으로 상당 부분 막혀 있다. [사진 소방방재신문 ]

3년 넘게 이 목욕탕에 다녔다는 김모(48)씨는 “연 회원권으로 매일 목욕하러 오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항상 그곳에 목욕 바구니를 놓고 다녔다. 그 문이 창고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여자 목욕탕에서 수년째 매점을 운영하다 지난 1일 그만둔 B씨는 “수년 동안 그 비상구는 잠금장치가 망가져 잠기지 않았다. 내가 그 비상구로 출퇴근을 자주 했으므로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재 이후 사진을 보니 문손잡이의 색깔이 달라졌다. 최근 3주 이내에 건물주가 새 잠금장치로 바꾼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21일 화재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화재를 진압한 뒤 해당 비상구를 열고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이뤄진 이 건물에 대한 소방 점검에서 2층 여자목욕탕은 아예 빠져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청 관계자는 “당시 소방 점검표에 2층 비상구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소방 점검을 한 J사 관계자는 “여자 목욕탕에 있던 사람들이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목욕탕을 점검하다 아주머니들에게 쫓겨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송우영·박진호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