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이 아니더라도 겨울이면 하천과 강, 호수는 얼어붙기 마련이다. 얼음은 강과 호수 표면에서 얼기 시작한다. 바닥에서부터 어는 것이 아니다. 덕분에 강과 호수의 물고기도 죽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고 얼음 낚시도 가능하다. 물이 가진 오묘한 물리 화학적 특성 때문이다.
물은 섭씨 4도에서 밀도 가장 높아
호수 바닥부터 얼기 시작한다면
물고기 겨울에 살아남을 수 없어
지구 상에 기체·액체·고체가 모두 존재
두 개의 수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로 이뤄진 물.
물은 지구에서 액체(물)·기체(수증기)·고체(얼음) 세 가지 상(相)으로 존재한다. 일반적인 조건에서 세 가지 상 모두를 쉽게 볼 수 있는 드문 물질이다.
압력이 가해지만 어는점이 낮아진다. 600기압에서는 영하 5도에서 얼기 시작한다. 이런 원리 덕분에 우리는 스케이트를 탈 수가 있다. 몸무게로 인한 압력 때문에 얼음 표면이 순간적으로 녹고, 스케이트 날이 미끄러질 수 있다.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처럼 0.34기압인 곳에서는 68도에서도 끓지만, 220기압에서는 끓는점이 374도나 된다. 압력밥솥에서는 더 높은 온도에서 물이 끓기 때문에 맛있는 밥이 나온다.
물의 밀도가 가장 높아지는 온도는 영상 4도, 정확하게는 영상 3.98도다. 이때 밀도는 ㎥당 1000㎏이다.
반면 얼음의 밀도는 917㎏/㎥인데, 물은 얼면서 부피는 약 9% 증가한다. 이 때문에 밀도가 낮은 얼음이 물에 뜨고, 병 속의 물이 얼면 병이 깨진다.
얼어붙은 호수에 물고기가 살 수 있는 이유
이러한 물의 특성은 특히 물고기들에게 중요하다. 만일 물이 어는점에서 밀도가 가장 높으면 겨울철 강과 호수 표면에 차가운 물이 가라앉아 바닥에서부터 얼게 된다. 이 경우 호수나 강 전체가 얼어붙어 물속 생물은 모두 얼어 죽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얼음이 위에서부터 얼고, 표면의 얼음은 단열 기능까지 한다. 대기는 영하로 떨어져도 얼음 아래 물은 얼지 않는다. 밀도가 높은 영상 4도의 물이 가라앉아 바닥을 채운다.
겨울이 지속하면 문제가 생긴다. 물속이나 퇴적토에 유기물질이 많으면 미생물들이 분해하면서 산소를 소비한다. 얼음 때문에 대기로부터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상태에서 소비만 일어나면 산소가 고갈된다. 산소 고갈뿐만 아니라 황화수소 같은 유독 가스도 생성되면서 물고기가 떼죽음 당할 수도 있다.
바닷물은 상황이 다르다. 염분 때문에 바닷물의 어는점은 영하 1.9도 정도이고, 밀도가 가장 클 때의 온도 역시 4도가 아니라 어는점 부근이다. 어는점 부근의 차가운 물은 계속해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대양 대류 대순환(Oceanic Conveyor Belt)이 이뤄지고, 북극해 밑바닥 해수 수온이 4도보다 훨씬 찬 이유다.
물의 독특한 성질은 수소결합 때문
물은 다른 물질에 비해 비열(比熱, specific heat capacity)이나 증발열(蒸發熱, heat of vaporization)이 크다.
물 분자들 사이에 수소결합(hydrogen bonding)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을 이루는 산소 원자가 수소 원자보다 전자를 잡아당기는 힘이 크기 때문에 산소 원자는 음의 전하를, 수소 원자는 양의 전하를 띠게 된다. 그래서 수소-산소…수소-산소-수소(수소결합은 …로 표시) 형태의 수소결합이 만들어져 물 분자는 서로 강하게 붙들게 된다.
높은 비열이나 증발열은 지구온난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기보다 바닷물은 온도 변화 없이 1000배의 열을 흡수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열의 80~90%를 바닷물이 흡수한다.
하지만 열을 흡수하면 물도 팽창한다. 수온이 4도에서 100도로 상승하면 물의 밀도는 4%가량 줄어든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는데, 빙하가 녹아내리는 탓도 있지만, 열을 흡수한 바닷물이 팽창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표면장력은 물 분자들이 서로 뭉쳐 표면적을 줄이려는 힘을 말한다. 표면의 물 분자들은 아래쪽으로만 힘이 작용하므로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서로 뭉치게 된다. 이슬방울이 둥글게 맺히는 것도 바로 이 표면장력 때문이다.
이 모세관 현상과 식물 잎에서 일어나는 증산작용 덕분에 키 큰 나무도 물을 높이 빨아올릴 수 있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물은 0.01%뿐
우주에는 엄청난 양이 물이 존재한다. 지난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등의 국제공동연구팀은 120억 광년 거리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퀘이사) 주변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큰 수증기 덩어리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수증기량은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물의 4000배, 지구 상에 존재하는 물의 약 140조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처럼 46억 년 전 태양이 탄생하기도 전에 우주 공간에는 기체가 존재했고, 지구 상의 물 가운데 절반은 바로 성간 기체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의 절반은 태양계로부터 온 것인 셈이다.
지구 상의 물 대부분은 짠 바닷물(97.47%)이거나 빙하·만년설(1.76%), 지하수(0.76%)이다. 호수·하천·강처럼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전체의 0.01%에 불과하다. 지구 상의 물이 5L라고 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는 담수는 찻숟가락 하나 분량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2~4L 정도의 물을 마셔야 한다. 마시는 물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는 하루 100~200L의 물이 필요하다. 연간 36~72㎥에 해당한다. 더욱이 농업과 산업, 에너지생산 등 각 분야에도 물이 필요하다.
한국, 물 부족 국가라지만 부족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307.7㎜(1981~2010년 30년 평균, 전국 기준)로 세계 평균 715㎜(육지 기준)보다 훨씬 많다.
강수량에 국토면적(10만㎢)을 곱한 연평균 국내 수자원 총량은 1307억㎥이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연간 수자원량은 2615㎥로 세계 평균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여름철(6~9월)에 강수량이 집중돼 수자원 대부분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전에 바다로 흘러간다. 강물과 댐에 가둔 물, 지하수로 실제 사용하는 양은 수자원 총량의 26%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이 물을 부족한 줄 모르고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많은 양의 농축산물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쌀 1t을 생산하는 데에는 물 2895㎥가 필요하고, 쇠고기 1t을 생산하는 데는 1만5497㎥의 물이 들어간다.
쌀과 쇠고기를 수입함으로써 그만큼의 물을 덜 사용하게 된다. 농산물 수입이 바로 물을 수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물 발자국(Water footprint)이나 가상수(假想水, Virtual water)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상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된 물의 양을 계산하고, 그 상품이 다른 나라로 갈 때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만큼의 물도 따라 수출된다고 간주한다.
수자원은 국가별로 고르게 분포하지 않고, 인구밀도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물 부족은 곧잘 국제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을 둘러싼 공동체들 사이의 분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는다. 경쟁자를 뜻하는 영어 라이벌(rival)과 경쟁을 의미하는 라이벌리(rivalry)는 모두 개울이나 시내를 뜻하는 라틴어 리부스(rivus)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중략)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에서 물로 인해 생긴 국가 간의 폭력사태는 37건이나 된다. 이 가운데 7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동 지역에서 발생했다. -권순국·강찬수 등 『사람과 물』
요르단 강물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이스라엘과 시리아는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다.
나일 강의 물을 둘러싸고 상류의 부룬디·콩고·에티오피아·케냐·르완다·수단·탄자니아·우간다 등 8개 나라와 하류의 이집트가 갈등을 벌이고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상류에서 누군가 물의 흐름을 변경하려 한다면 이를 막기 위해 전쟁이라도 할 태세가 되어 있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 물 위협을 느낀 이집트는 수단에 대해 공중 폭격명령을 내리기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인구증가와 산업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도 지구 전체의 물 수요는 지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21세기에도 인류 사회가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국가 간 협력하지 않는다면 물을 둘러싼 분쟁은 커질 수밖에 없다.
물과 같이 하면 가장 잘 하는 것이다
고대 철학자 탈레스는 물을 ‘만물의 원리’라고 했고, 중국의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가장 잘하는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낮은 데로만 흐르는 겸손함과 모든 것을 녹여내는 포용력을 칭송한 것이다.
노자는 사람이 길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길을 따라 사는 삶의 모습을 그는 물의 은유를 통해 들려준다. “가장 잘 하는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아니하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니, 길에 가깝다. 머물 때는 물처럼 땅을 잘 기름지게 하고, 마음을 쓸 때에는 물처럼 그윽하고,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물처럼 더불어 잘 어울리고, 말을 할 때는 물처럼 미덥게 하고, 바르게 할 때는 물처럼 잘 다스리고, 일을 할 때는 물처럼 능숙하게 하고, 움직일 때는 물처럼 때를 잘 맞춘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므로 허물이 없을지니.” (上善若水. 水善而萬物以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도덕경 8장) - 이상수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그런 물을 오염시키는 것이 사람이다. 물의 또 다른 요소인 ‘수질’에 대해선 다음에 다룰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