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여 년 전에 태어나 세계 역사를 바꾸고 지금도 인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수. 그는 33년의 생애를 살았지만 공생애라는 마지막 3년 외에는 기록이 도무지 없다.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어릴 적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눈 게 전부인데, 그 당시 서른의 나이면 사회적으로 완성되었을 연륜이며, 영민했다고 하니 직업적으로도 성공했을 게다. 아버지 요셉의 직업은 성경에 목수라고 나와 있어 이를 가업으로 이었을 예수도 목수라고 단정해 왔다. 사실일까?
나사렛은 목수가 있기 어려웠다
요셉의 직업이 텍톤이었으니
예수 직업도 건축가 아니었을까
건축가는 남의 집을 짓는 사람
예수도 더욱 큰 집을 짓기 위해
광야로 나간 게 아니었을까 …
예수가 건축가라는 상상에 이른 나는, 예수가 광야로 나간 까닭도 상상하고 만다. 건축가는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을 짓는 자여서 그들의 삶과 존엄에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하며 지극한 사랑과 존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해야 하며 애통해야 하고 의(義)에 주려야 하며 그들의 삶을 화평케 하도록 온유하고 긍휼하며 청결해야 한다. 바른 건축을 하기 위해 권력과 자본이 펴 놓은 넓은 문이 아니라 거칠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며, 뱀같이 지혜로워야 하고 결단코 불의와 화평하지 않아야 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않아야 하며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아야 하니 나 같은 비루한 건축가는 언감생심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경계 밖으로 추방해 홀로 서서 세상을 직시하는 성찰적 삶을 가져야 바른 건축가가 된다는 걸 알게 된 예수는 더욱 큰 집을 짓기 위해 광야로 나간 게 아닐까 상상한 것이다.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온 그는 스스로 진리가 되어 이 땅에 사랑의 집, 평화의 도시를 지었으니 그게 (트럼프가 불 지르고 말았지만) 예루살렘의 본 뜻이었다. 모레가 성탄절인데 지난 1년간 우리를 옥죄었던 부정과 불의, 부패와 타락, 분열과 갈등의 우울한 뉴스를 모두 접고, 이날 하루만이라도 사랑과 평화만을 이야기하며 지내면 안 될까….
사족. 마틴 루서 킹 목사는 평화를 정의가 실현된 세상이라고 했다. 평화의 영어 peace도 pacify(평정하다)와 같은 어원이어서 평화는 불의하고 부정한 상황을 봉합한 게 아니라 이들을 제거한 이후에 이뤄지는 세상인 게다. 한자어 평화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화(和)가 뜻하는 바는 벼(禾)를 모든 이들(口)에게 골고루 나누는 세상이 참된 평화라는 것이다. 아름답다 평화여….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동아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