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는 “언니처럼 착하지도 인내심이 있지도 않은 내가 50년 수도 생활을 했다고 하니까 감사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이 생활을 못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물빛 담백한 평화를 느낀다”고 했다.
6년 만에 산문집 『기다리는 행복』
내년이면 수도서원 한 지 50년
“명랑 투병 하겠노라 큰소리쳤는데
병원서 덮던 분홍수건 보면 눈물도”
“명랑투병하겠다고 큰소리쳤고, 병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투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할 때마다 병원에서 덮었던 분홍빛 수건을 치료가 끝난 후 다시 보니 막 눈물이 나더라”는 말도 했다. 사물도 자신과 고통을 함께한 거였다는 얘기였다.
산문집에는 ‘기쁨과 감동의 언어’가 넘친다. 최근 6년간 각종 지면에 발표한 짧은 글과 시, 1958년 첫 서원 후 1년간 쓴 일기 등을 모은 책이다. 수녀는 산문집의 ‘여는 글’에서 언니의 죽음으로 지난 가을 내내 눈물 속에 보냈지만,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떠날 날이 있음을 절감하며 더욱 충실하게 ‘순간 속의 영원’을 살고 있다고 썼다. 한 모임에서 어떤 수녀에 대해 뒷말을 했다가 하루종일 쓰디쓴 괴로움을 맛보았다고 털어놓고(167쪽 ‘판단보류의 영성’),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겸손하게 힘을 빼는 일이었노라(133쪽 ‘힘을 빼는 겸손함으로’)고 고백한다.
오랜 시간 동안 시를 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묻자 “생각이 별로 복잡하지 않고, 좋은 생각을 하며 돌아다닌다. 하루에 몇 줄이라도 있었던 일들을 일기처럼 기록하는데 저금하듯 그렇게 모은 생각의 조각들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약간이겠지만 부모님에게 받은 재능도 있는 것 같고, 수도원에 안 들어왔더라도 괜찮은 작가가 됐을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수녀라서 사랑받는 거라는 일부의 삐딱한 시각을 견제한 발언이었다.
한국사회를 위한 메시지를 청하자 “항상 우리 자신이 아닌 외부, 남을 탓하는 게 우리의 문제인 것 같다”며 “가령 북핵 문제만 해도 김정은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그를 위해 기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TV 출연이나 강연 등 개인활동으로 내가 소속된 베네딕도 수녀회 500여 명의 수녀에게 불편을 끼쳤는데, 그들을 사랑으로 챙기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평범함을 새로운 감동으로 발견하는 삶, 당연한 것을 경탄의 감각으로 발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