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전형과 필기 시험, 토론 심사까지 거친 뒤 치르게 된 이번 면접을 앞두고 딸애는 여러 예상 질문을 떠올리며 모범 답안을 궁리해봤다고 한다. 숙의민주주의나 탈원전 정책 등 최근 시사 이슈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다듬는가 하면 혹시 나올지 모를 돌발 영어 질문에 대비한 연습도 해뒀다. 하지만 헛수고만 한 셈이 됐다. 처음엔 어이없다며 씩씩대던 아이는 시간이 흐르자 긴가민가 하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만일 다음에 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땐 순순히 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해도 될까. ‘죄송하지만 제 자질과 능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질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그 얘길 들으며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또 미안했다. “그 회사가 이상한 거지 앞으론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라고 장담할 수 없어서. 그리고 이렇게 구린 세상밖에 물려주지 못해서.
민주화 이뤘다지만 일상 속 민주주의는 미완의 숙제
청년들 분노 더 커지기 전에 부모 세대 책임 다해야
경제 분야의 ‘민주주의’ 역시 시급하다. “차라리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에 살고 싶다”는 미국 청년들이 무려 58%에 달한다는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며 더욱 통감하게 된 문제다. 자본주의 종주국이라는 미국에서 자본주의를 선호한다는 응답(42%)이 오히려 더 적게 나온 결과는 바다 건너 이 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나머지는 점점 더 가난해지는 불평등한 체제를 견디다 못해 청년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한 거다.
우리도 별 다를 것 없다.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이 사실상 실업자 신세다.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건 극소수이고 대부분 중소기업에 가거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한다. 그런데 이들 대다수의 초임이 대기업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불평등이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교수 시절이던 지난봄,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이 같은 현실을 설파하며 “제발 아파하지만 말고 분노하라”고 청년들을 들쑤셨었다. 이런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가 책임을 회피하니 이를 깨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건 바로 청년 세대의 몫이라면서.
장 실장의 인식에 100% 공감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청년들에게만 해내라는 건 너무하다 싶다. 일상의 민주주의도, 경제의 민주주의도 사랑하는 자녀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미래인 만큼 우리 부모들도 더 늦기 전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마땅할 터다. 청년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