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21세 나이로 서울에 파견된 램프먼씨는 대사관 교환원으로 근무하던 이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한국 전쟁중 결혼해 65년 해로
숨진 아내 그리워 한국 또 방문
램프먼씨는 6.25 전쟁 발발에 따라 일본으로 대피했고 남베트남 사이공 미국 대사관에 재배치 됐다. 서울 수복 뒤 미국 대사관으로 다시 출근한 램프먼씨는 교환원으로 돌아온 이씨와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램프먼씨는 이씨의 어머니에게 데이트 허락을 받고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으며 미군이 북한으로 진격한 뒤 서울에서 전통 혼례를 치렀다.
하지만 램프먼씨 부부는 곧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뒤바뀌며 서울에서 200마일 거리에 위치한 부산에 마련된 임시 대사관으로 피란을 떠나 거주하게 된다.
1953년 휴전이 되면서 램프먼씨 부부는 워싱턴 DC로 이주해 4명의 자녀를 둔 가정을 꾸리게 된다. 램프먼씨는 "미국으로 건너온 아내는 영어공부에 열심이었고 미국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며 "이웃 주민처럼 예쁘게 마당을 가꾸는 것도 그녀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램프먼씨는 지난 2015년 온 가족과 함께 아내의 고향인 서울을 찾았다.
하지만 이씨는 서울 방문기간 고령의 나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의 출생지와 1.5마일가량 떨어진 호텔방에서 숨을 거뒀다.
램프먼씨는 90세의 나이로 올 가을 다시 서울을 찾았다.
그는 아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를 찾아 6.25 전쟁 당시의 상황을 알리고 한국전에서 용감히 살아남은 아내를 위한 비석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