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멀고먼 20조원 국가 연구개발(R&D) 개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3일 ‘과학기술로 독거노인 고독사 해결 나선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 개발 사업’이라는 취지의 이 신규 과제는 ‘고령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디지털 컴패니언(companionㆍ동반자) 개발을 위해 올해 말부터 2020년까지 4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내용이다.
과기정통부, 고령자 삶의 질 향상 위한 디지털 컴패니언 과제 선정
"독거노인 위한 곰돌이 모양 지능로봇 개발"
동반자 말벗도 되고, 위급상황엔 전화도
2013년 끝난 1000억원 국가과제 지능로봇사업과 판박이
"곳곳에 중복과제 뿌려지고, 성과없는 성공작품 쏟아져"
" 한국의 국가 R&D는 난치병을 앓고 있어”
환상적이다. 대당 2000만원 이상이라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감성로봇 '페퍼'가 울고 갈 정도다. 고령화 시대 1인 노인가구의 정서적 소외와 이로 인한 고독사가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박 조짐까지 점쳐진다.
1000억원짜리 10년 과제가 끝난 2013년 이후 이 프로젝트는 어찌됐을까. 대기업들은 잉키와 실벗을 외면했다. 지능로봇사업단의 특허기술은 구구절절 사연 끝에 현재 로보케어라는 벤처기업에 흘러와 있다. 지난해까지 단 한 대의 로봇도 팔지 못했던 이 회사는 올 들어서야 수십대의 매출을 올리면서 회생의 시동을 걸고 있다. 국가 혈세 1000억원짜리 실벗 로봇기술을 보유한 이 회사와 2017년 말 과기정통부가 새로 40억을 투입한다는 고령자를 위한 디지털 컴패니언의 차이는 뭘까. 수년 전 이미 완성한 기술에 국가가 다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얘기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비전과 전략이 수정되고, 그에 따라 국가 R&D 과제도 또 다른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뿌려진다. 과제를 수행하는 관료는 고시 출신의 엘리트들이지만, 영혼을 가질 수 없다. 1년이 멀다고 자리를 옮기고, 새 정부의 시책에 맞춰 아름다운 정책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 R&D 20조원은 눈먼 돈이 아니다. 시민의 유리지갑에서 나온 눈물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소중한 피다.
“실벗과 곰돌이 로봇뿐이 아니다. 정부부처 곳곳에서 중복과제가 뿌려지고, 성과없는 성공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국의 국가 R&D는 난치병을 앓고 있다.”
역시 국가 R&D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한 기업인이 기자에게 솔직히 털어놓는 푸념이다.
최준호 산업부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