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생존 아동들에 대한 낙인
라이베리아 3년 전 에볼라 휴교령
여아 상당수 학교로 못 돌아가
초등학교 졸업률은 47%에 불과
에볼라로 부모 잃은 열 살 소녀
“의사 되어 사람들 지킬래요”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탔고, 비행에 소요된 시간이 20시간이 넘었다. 출국 전 라이베리아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1989년부터 10여 년 동안 내전이 이어졌던 곳, 에볼라의 주요 피해지로 사망자가 2200여 명 이상 발생한 곳 정도였다.
이튿날 몬로비아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마을의 ‘치킨 수프 공장’에서 아홉 살 소녀 빅토리아를 만났다. 한때 이 마을엔 치킨스톡(닭육수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소스) 제조 공장이 있어 지역 생계를 책임졌다. 내전 이후 공장은 파괴됐고 지금은 터만 남았다. 차들이 뿜는 매연과 흙먼지가 날리는 거리에서 빅토리아는 여덟 살 때부터 물·비스킷 등을 팔았다.
- 엄마·아빠는 어디에 있나요?
- “아빠 얼굴은 기억이 안 나요. 제가 아주 어릴 때 멀리 떠나셨대요. 엄마는 많이 아파요. 전 이모네 집에서 사촌들이랑 같이 살고 있어요.”
- 학교는 안 다녀요?
- “사촌오빠 세 명은 모두 학교에 다니는데 전 안 가요. 전 새벽 6시쯤 일어나 물을 팔러 나가요. 하나에 5라이베리안 달러인 물을 팔아 500라이베리안 달러(약 3000원)를 벌면 집에 가 이모께 드려요.”
빅토리아의 꿈은 가수였다. 소녀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마음이 슬퍼질 때마다 노래한다고 했다. 최근 그는 국제 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스쿨미(School m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운 학습지원센터 ‘릴라(Leela)센터’에서 글과 산수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스쿨미는 빈곤과 사회적 편견으로 교육의 기회를 잃은 아프리카 여아들을 학교에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를 통해 라이베리아에 학교 4곳과 교육지원센터 3곳을 지었다. 빅토리아는 “언젠가 꼭 학교에서 음악 수업을 받아 보고 싶다”며 크고 동그란 눈을 반짝였다.
아만다 졸타 라이베리아 마르기비주 지역 교육감은 “휴교 기간 동안 실제로 학교에 가지 못한 여성 청소년의 출산율이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만난 소녀 릴리(18) 역시 2년 전 남자친구와 아들 윈스턴(1)을 낳은 뒤 학교를 그만뒀다. 릴리는 “아이를 낳자 남자친구는 도망가 버렸고, 생계를 위해 2년 동안 거리에서 도넛을 팔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몬로비아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인 마르기비주에는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가 지은 여학교가 있다. 여자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360여 명의 학생과 13명의 교사 모두가 여성인 학교다. 지난달 30일 찾아간 학교 교실 벽 곳곳에는 ‘Let girls learn’(소녀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라)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나라에선 여자 아이들이 남교사나 남학우들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잦아 보통의 학교는 그다지 안전한 곳이 아니다.
이 학교의 위도르 데이비스 교장은 “교사들이 지금도 거리를 떠도는 여자 아이, 부모 등을 찾아가 등교를 설득하고 있다. 여자 아이들도 배움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장관·의사·변호사 등 뭐든 될 수 있다. 배움만이 이 나라 여성의 열악한 인권과 자존감, 삶의 질을 향상시킬 유일무이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 뒤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Girls run, run to her school. There is a answer for you.’(소녀들이여, 학교로 가라. 그곳에 널 위한 답이 있다.)
라이베리아=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