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골프 룰을 일부 개정했다.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청자나 갤러리 등의 룰 위반 제보를 받지않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벌타를 받는 것을 몰랐을 경우 잘못된 스코어카드에 사인을 했더라도 원래 벌타만 매긴다는 것이다.
톰슨, 공 5㎝ 옮겨 규칙 위반 명백
우승 놓치고 우는 모습에 동정론
4월 ‘합당한 근거 땐 무벌타’ 이어
시청자 제보 반영 않기로 룰 개정
반칙 하고도 잘 몰랐다 우기면 돼
가장 부정직한 스포츠로 전락 우려
복잡한 규칙을 간단하고 알기 쉽게 개정하는데 찬성한다. 그러나 시청자 제보 금지는 신중해야 했다고 본다. 이번 개정이 렉시 톰슨 사건 재발방지법이라면 더 동의할 수 없다. 톰슨에 대한 면죄부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톰슨은 명백하게 공을 옮겨 놨다.
톰슨이 일부러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상관 없이 2벌타다. 톰슨은 룰을 위반한 줄 몰라 스코어카드 오기 2벌타를 받게됐다고 억울해했다. 그가 옮긴 5cm는 공 지름(4.267cm) 보다 크다. 프로 선수가 이를 몰랐을까.
골프는 멀리, 똑바로 치는 것만 테스트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순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퍼트를 할 수 있는지도 시험한다. 톰슨은 그런 부분에서 약점이 있었다. 올시즌 마지막 대회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선 약 50cm의 퍼트를 넣지 못했다. 그래서 50만 달러의 우승상금과 올해의 선수상을 놓쳤다. 톰슨은 심지어 5cm 퍼트를 못 넣은 적도 있다.
골프는 독특한 스포츠다. 다른 스포츠는 공이 한 개다. 모두가 그 공 하나를 보고 있다. 골프는 작은 공 70여개가 아주 넓은 공간에서 경주용 자동차처럼 빠른 속도로 동시에 날아다닌다. 누가 룰을 지켰는지 어겼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규칙 준수를 선수의 양심에 맡긴다. 이를 어겼을 경우(스코어카드를 틀리게 냈을 경우) 큰 벌(실격)을 줬다.
톰슨의 행동은 2016년 이전이었다면 실격이었다. 그렇게 실격된 선수는 많다. 톰슨은 완화된 룰의 첫 수혜자였다.
벌타를 알려준 시간이 적절하지 못해 경기력에 지장을 받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경기가 끝난 후에 알려줬다면 어땠을까. 톰슨이 우승을 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내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 공격적으로 경기할 기회를 놓쳐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2016년 US오픈 연장에서 안나 노르드크비스트가 벌타 받은 사실을 늦게 알려줘 손해를 봤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공정성을 위해선 톰슨에게 즉시 알려주는 것이 적절했다.
톰슨의 4벌타 사건 때문에 이 대회 직후인 지난 4월 ‘합당한 근거가 있으면 비디오 판독 결과 잘못된 것으로 나오더라도 벌타를 매기지 않는다’는 규칙도 생겼다. 증거가 나와도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톰슨은 지난 9월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에서 헤저드 뒤에 둬야할 공을 훨씬 앞쪽에 드롭하고 쳤다. 비디오상 위반이 드러났지만 이 조항에 따라 없던 일이 됐다. 더 큰 문제는 4월에 생긴 규정과 이번에 생긴 규정이 결합하면 양심의 의무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다. 잘못이 드러나도 “정당한 플레이로 알았다”고 우기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
톰슨은 12일 “나 같은 선수가 나오지 않게 돼 다행”이라고 했다. 희생자라는 뜻인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톰슨 개인을 비난하려하는 것은 아니다. 스타 선수가 잘못을 하고도 동정론으로 무마된다면 나머지 전체가 피해를 본다.
골프는 고루한 부분이 있다. 그 고지식함이 골프의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규제기관은 “사회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 규칙 변화를 한다”고 했다. 거짓이 흔해진 사회와 발맞추겠다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