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가 강한 유럽연합(EU)은 이에 유리한 높은 CO2(연비) 규제를, 가솔린차에 강한 미국은 디젤차에 불리한 높은 배출가스(미세먼지) 기준을, 하이브리드차에 강한 일본은 중간 수준의 규제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미국보다 60년, 일본보다 30년 늦게 시작해 아직도 기술 수준이나 브랜드 가치, 차종 다양성, 차량 생산량 등 전반적으로 뒤처져 있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현실과 비교하면 환경 규제는 유럽의 CO2, 미국의 배출가스라는 양쪽 최고 기준을 준용함에 따라 사실상 환경규제 강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국민소득도 선진 자동차 강국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생산자, 소비자 모두 현행 환경규제 부담을 감당해내기 어렵다는 것은 뻔한 것이다.
프랑스, 친환경차협력금 도입후
10년간 차 생산 100만대 줄어
못팔면 벌금, 전기차 의무판매제
라인업 강한 외국 업체에만 유리
전기자동차 의무판매제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수준이나 여건과 전혀 다른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사회주의형 국가인 중국에서만 도입하고 있는바, 실상은 테슬라와 중국의 자국 전기차 전문 업체를 위해 다른 차량들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제도이다. 현재 전기차는 정부의 구매보조금 지원 수량 이상의 수요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업체 별로 의무판매량을 정해준다고 해도 이를 소화할 길이 없어 그대로 과징금으로 이어지며, 업체 간에 크레딧 거래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전기차 라인업이 약한 국내 업체가 외국의 친환경차 업체에 영업자금을 지원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높은 가격, 충천시설 부족과 충전시간의 걱정으로 수요자가 사지 않는 것을 자동차 업체가 어떻게 더 팔 수 있겠는가?
전기차는 아직 팔수록 손해인데다 경쟁국들과 달리 정부의 수요창출과 인프라구축 부담까지 떠안고 막대한 과징금까지 피할 수 없게 되어 우리 산업은 하강 곡선을 그리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의 개도국 비중이 70% 이상으로 향후 최소 15~20년간은 내연기관차가 우리 산업의 주된 먹거리임에도 국내 본토부터 생산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자동차 산업이 강경하고 대립적인 노사관계로 치명타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경쟁국보다 독한 환경규제로 압박하면 어떻게 견디겠는가?
우리와 맞지 않는 특수 사례들을 가리지 않고 직수입해 몇 개의 법조문으로 세계적인 환경규제의 만물상으로 만들 게 아니라 규제의 내용과 방법, 강도와 속도가 독약이 아닌 양약이 되어 산업 발전과 환경규제가 조화를 이루는 ‘한국형 환경정책’을 먼저 도출해내는 것이 선진형 정부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 업체들도 내연 기관차의 친환경화와 함께 친환경차 개발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내연 기관차와 친환경차 시장 모두에서 국제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