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준(77)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회화사 연구에 훌륭한 옥동자가 태어났는데 팔십 넘어 옥동자를 낳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라 운을 떼 청중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단원 김홍도 등 조선시대 화가 220명을 선별해 컬러 도판으로 그림을 보여주고 약력과 서명, 화제, 도장까지 정리한 사전이자 개설서인 총람은 한국 회화사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은 쾌거로 평가받는다.
『조선시대 화가 총람』 출간 기념회
단원 등 220명 엄선 컬러 도판에
그림·약력·서명 등 일목요연 종합
안휘준·권영필·유홍준 교수 축하
축사를 맡은 유홍준(68) 명지대 석좌교수는 “소헌 선생님의 박물관 인생 전공은 도자사였으나 미술부에서 일하시며 회화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 또한 깊어졌고, 정년 이후 하고 싶던 일을 비로소 완수하신 셈”이라고 설명했다. 조선 후기 수장가였던 석농 김광국의 『석농화원』 등 여러 자료를 발굴해 1484쪽 전 2권 분량의 방대한 총람을 완성하는 데 힘을 보탠 유 교수는 “마음에 간절했던 일을 하시는 것이 팔십에 정정한 건강을 유지하시는 비결인 듯 싶다”며 “국가가 할 일을 왜 혼자 하셨습니까”란 말로 선생의 업적을 축하했다.
동료, 후학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정양모 선생은 “여기 모이신 이들 한 분도 빼지 않고 다 반갑다”고 말문을 열었다. 총람을 내려 정진한 40여 년 시절이 스쳐지나가는 듯 “시간을 오래 끌어 이런 좋은 책이 나왔다”고 감회에 젖었다.
“저를 박물관으로 이끌어주신 혜곡 최순우 선생이 늘 ‘사람들이 많이 보고 이용할 수 있는 걸 지어라’고 하셨지요. 그건 사전입니다. 화가의 약전(略傳) 말고 그림 속에 나타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말할 수 있는 책 말이죠. 특히 낙관은 화가의 서명이고, 인장은 도장을 찍는 일임을 구분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어요. 제 저술이 한국 문화예술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정양모 선생은 무료로 도판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 간송문화재단, 삼성미술관 리움, 국립중앙박물관에 고마움을 표했다.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몇 년을 떠돌던 원고를 보듬어준 시공사에도 인사했다. 사회를 본 박영규 무형문화재위원장을 바라보며 “저 친구를 대학생 때 봤는데 이번 총람 일을 제 일처럼 봐줬어요” 하니, 박 위원장은 “저도 70이 넘었습니다, 선생님” 낯을 붉히자 정 선생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나이도 많아.”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