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M] 이런 호사가 있나 싶다. 극장에서나 볼 법한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언제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온라인 스트리밍의 절대 강자,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배우들을 소개한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전 세계의 관심 속에 버젓이 살아 있는 역사적 인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91)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지난해 11월 첫 시즌을 선보인 ‘더 크라운’에서 영국 배우 클레어 포이(33)가 그 엄청난 일을 해냈다.
2017 넷플릭스 화제작 속 빛나는 배우들
'더 크라운' 클레어 포이
‘더 크라운’은 살아 있는 영국 여왕의 일대기를 그리되, 그 안의 시시콜콜한 스캔들을 일일이 들춰내는 재미에 빠지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지나고, 의회 정치 체제와의 힘겨루기 속에 왕실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비해야 하는 시기,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여왕의 자리에 오른 한 인간의 이야기. 그 한가운데 클레어 포이의 진실한 연기가 있었다.
한눈에 띄는 개성이나 특별함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왕실과 나라를 살피고,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하며, 부족함을 깨닫고 노력하는 젊은 엘리자베스. 그 모습은 시대와 신분을 뛰어넘어 모든 시청자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엘리자베스 2세를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연기하는 건 정말이지 흥미로운 일이다. 그가 거쳐 온 삶을 돌아보라. 그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기쁨과 절망을 겪지 않았나.” 어릴 적, 배우가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그는 영국의 연극 무대를 거쳐 가장 야심 찬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소화하는 연기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뿐 아니다. 스티븐 소더버그, 데이미언 셔젤 같은 영화감독들이 그에게 한참 눈독 들이고 있다. 그에 앞서, 12월 8일 새로 공개하는 ‘더 크라운’의 두 번째 시즌에서 여왕의 자리에서 가족들과 갈등을 겪는 엘리자베스 2세의 고민을 그가 또 얼마나 놀라운 연기로 그려 내는지 지켜봐야겠지만.
‘퍼스트 맨’(촬영 중, 데이미언 셔젤 감독)
‘언세인’(원제 Unsane, 후반 작업 중,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울프 홀’(2015, BBC2)
16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TV 시리즈에서 헨리 8세(데미언 루이스)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으로 등장한다. ‘더 크라운’에서와 달리 차갑고 날 선 연기를 볼 수 있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