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베이징)=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론진
1911년에 만들어진 미닛 리피터(시간을 읽어주는) 포켓 워치. 1915년에 만들어진 손목시계. 10분의 1초 단위를 측정할 수 있는 크로노카메라(1949). 모두 100년 가까이 된 빈티지 시계와 시간 계측기다. 마치 현대 시계가 걸어온 역사를 축소해 놓은 듯한 오래된 전시품들이 중국 베이징에 사흘동안 옮겨왔다.
론진이 창립 185주년을 기념해 11월 16일 베이징 태묘(太庙)에 작은 시계 박물관을 만들었다. 17~18일에는 일반에도 공개된 이 전시는 스위스 쌍띠미에 있는 론진 본사 박물관의 작은 버전이다. 1832년 설립된 이후 줄곧 쌍띠미에 지역에 본사가 있다. 론진 역사를 담은 박물관도 이곳에 함께 있다. 한 브랜드의 시계 박물관이지만, 그 소장품만큼은 흔한 웬만한 유명 시계 박물관을 압도할 만큼 규모가 크고 구성도 충실하다. 단순히 오래되서가 아니라 늘 시계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개척자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베이징 전시는 쌍띠미에 박물관에서 공수해온 전시품들로 구성됐다.
아주 오래된 곳에서 열린 아주 오래된 브랜드의 전시였지만, 그 안에는 혁신으로 가득했다. 전시물 곳곳에 ‘최초’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최초의 크로노그래프(시계 안에 있는 별도로 들어 있는 계기판) 회중시계(1878), 최초의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1913), 최초로 논스톱 대서양 비행을 함께한 시계(1927) 등이었다. 185년에 이르는 혁신의 역사, 분명 론진의 저력이다.
그런데 어째서 론진의 수장은 론진을 독특하다고 할까? 그는 “론진의 독특함은 제품 가격대별로 다른 수요 계층을 장악하는 힘에서 나온다”고 했다. 비슷한 가격대라면 론진이 다른 어떤 브랜드보다 고객을 만족시켜 준다는 뜻이다.
론진 가격대는 주력 모델이 100만원~300만 원 사이로, 다른 스위스 시계 브랜드에 비해 문턱이 낮은 편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나쯤 좋은 시계가 갖고 싶을 때 구매하는 엔트리(entry·진입)급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캐널 사장은 “아시아에서 잘 하고 있는데 중국의 엔트리 시계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널 사장은 “연매출 1억 스위스 프랑(1109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브랜드는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 론진, 티쏘, 파텍 필립 정도”라며 "론진 앞의 세 브랜드가 모두 럭셔리 군의 고가 시계라는 걸 고려할 때 우리가 그만큼 더 많은 사람에게 시계를 판매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론진은 하루에 시계 8500개를 만든다.
특정 가격대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최고의 선택지를 준다는 것은 다시 말해 동급 최강의 품질이라는 자신감이다. 185년의 혁신 역사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특히 이번 185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공개된 신제품 레코드 컬렉션을 보면 론진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품고 있는 무브먼트(시계 작동 장치)는 단순하지 않다. 조절장치인 ‘밸런스 스프링’이 특히 그렇다. 오토매틱 시계는 밸런스 스프링이 감겼다가 풀리는 힘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자성이나 온도 변화, 일상적인 사용으로 인한 마모 등이 더해지면서 시간 오차가 생긴다. 론진은 정밀도와 수명을 높이기 위해 크리스털 소재의 밸런스 스프링을 하나 더 추가했다. 온도나 자기장, 대기압의 영향을 적게 받고, 마모의 위험도 훨씬 적어졌다. 덕분에 론진 최초로 스위스 공식 크로노미터 인증기관(COSC)에서 공인을 받았다. 모든 레코드 컬렉션 다이얼 위에 ‘크로노미터’ 라벨을 확인할 수 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캐널 사장은 “시장이 원하는 걸 항상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며 론진의 경영철학을 말했다. “수년 동안 기술자들이 갑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걸 만들 테니 당신은 팔라’는 식이었는데 많은 시간 공을 들인 결과 지금은 ‘시장이 원하는 걸 만들어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