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1시(현지시간, 한국시간 7일 오전 3시) 관련 회견을 앞두고 트럼프는 전날인 5일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이집트 등 주변 4개국 정상에게 전화해서 이를 알렸다. 아랍권은 일제히 반발했다. "예루살렘은 무슬림에게 꼭 지켜야 하는 레드라인(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라는 격한 반응 속에 아랍권은 벌집을 쑤신 듯한 분위기다.
트럼프의 '이스라엘 수도=예루살렘' 공식 천명에
사우디 살만 국왕 "반대" 표명, 아랍권도 일제 반발
NYT "팔레스타인 수반이 지난달 빈살만 만나 논의"
대이란전선 공조 분위기 속 사우디 전략적 묵인 가능성
최근 무르익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긴장완화(데탕트)’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지난달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인 가디 아이젠코트 중장은 사우디 매체와의 이례적인 인터뷰에서 “대이란 전선(Iranian axis)과 관련해 사우디와 정보 공유를 할 준비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서 유발 스테이니츠 이스라엘 에너지장관도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사우디와의 비밀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고 시인했다. 공식 수교 국가가 아닌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의 접촉 사실을 이스라엘 고위 관리가 공개 시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 같은 변화엔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 강화를 견제하려는 양국의 공통 이해관계가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정학전문 매체 스트랫포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이후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둘 다 이란의 안보 위협을 우려하게 됐다”고 양국의 동병상련을 지적했다. 사담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의 분열,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부상 등이 지역 패권을 노려온 이란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사우디는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의 도전을 받고 있는 예멘과 각각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온건한 아랍 국가들과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급진적 이슬람 국가에 대항해 온건한 아랍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발언도 했다. 이 발언에서 급진 이슬람 국가는 이란을, 온건한 아랍 국가는 사우디를 지칭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를 뒷받침하듯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달 미래형 신도시 ‘네옴(NEOM)’ 건설 계획을 밝히는 자리에서 “극단주의를 타파하겠다”면서 온건 이슬람주의로의 회귀를 천명한 바 있다.
스트랫포는 빈살만 왕세자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한) 엑소더스나 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기억이 없는 세대”라고 칭하면서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에게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개선은 변화의 전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스라엘 역시 개방·개혁을 천명한 사우디로 하이테크 산업을 수출하는 무역 실익을 꾀할 수 있다.
다만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용인’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이에 반발하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저항이 우려된다. 미국의 중동 정책 등에 불만을 품고 9.11 테러를 감행한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도 사우디에서 태동했다. 그 때문인지 사우디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외교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아델 알주바이르 사우디 외무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도 "이-팔 분쟁이 아랍 평화를 바탕으로 해결되기 전까지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우디가 미국의 예루살렘 정책 변경에 겉으로는 반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묵인'하는 이중전략을 펼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