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정책 효과를 위해 일관성(coherence)을 매우 강조한다. 얼핏 보면 J노믹스는 서로 모순되는 정책들을 쏟아낸다. 한편에선 일자리를 강조하면서 다른 쪽에선 최저임금 인상, 통상임금 확대, 정규직화를 밀어붙인다. 모두 시간당 임금을 올리는 정책으로 기업의 고용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런 정책 충돌 속에선 아무리 공공부문에 재정을 쏟아부어도 민간부문 고용 확대의 마중물이 될 수 없다. 헛꿈이다.
J노믹스가 노동 개혁 주문해온
글로벌 처방전과 정반대로 간다
자칫 귀족노조만 대변할 경우
정치적 재앙을 자초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J노믹스에 일관성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매우 선명한 일관성이 드러난다. 친노조·반기업 색채가 그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최대 실세는 민주노총과 전교조다. 이들은 촛불과 탄핵의 인적·물적 토대였다. 어떤 정권 실세도 이 단체들이 “이러려고 우리가 촛불을 든 줄 아느냐”며 ‘촛불 청구서’를 내밀면 꼼짝 못한다고 한다. 문 대통령조차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눈에 밟힌다”고 했을 정도다.
지난주 국민연금 이사장의 “의결권을 강화하겠다”는 선언도 기업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국민연금이 진정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려면 정치권과의 확실한 독립이 우선이다. 그다음 오로지 수익률만을 기준으로 운용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인 출신의 이사장이 ‘국민 경제에 대한 기여’ 같은 주관적 정성평가를 들먹이는 순간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된다. 기업들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임금·투자를 줄이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늘릴 수밖에 없다. 기를 쓰고 외국인 주주들의 입맛에 맞춰야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
문재인 정권에는 경제전략 사령탑이 안 보인다. 청와대에 미시경제 전공자만 넘치고 거시경제 전공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산업조직론이나 재벌 개혁, 마케팅을 전공했다. 경제 전반을 조율할 식견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고 청와대도 그럴 의사가 없는 것 같다. 여기에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노총 출신이고,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민주노총 출신일 정도로 노조 쏠림현상이 강하다.
J노믹스에는 시장에 대한 불신과 기업을 향한 적대감이 묻어난다. 지금은 압도적인 국정 지지율 덕분에 J노믹스가 무리 없이 굴러가고 있다. 하지만 진짜 청구서는 내년 가을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 증원과 복지 확대 등으로 공공부문의 적자가 늘면 증세나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해진다. J노믹스의 운명은 결국 중산층의 조세저항과 이자율에 달려 있는 셈이다. 시중금리가 높아지면 정부는 국채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게 되고 적자국채 발행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J노믹스가 글로벌 처방전과 정반대로 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IMF와 OECD 등은 한국에 근본적 노동 개혁을 주문해 왔는데 정작 문재인 정부에선 노동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J노믹스가 자칫 한 줌의 귀족노조를 대변하려다 정치적 재앙을 자초할지 모른다.
이철호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