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한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남북의 명암을 부각했다. 한쪽은 자유와 정의, 평화를 보장하는 국가로 발전했지만 다른 한쪽은 폭정과 억압에 시달리는 위험천만한 나라로 전락했다. 이 극명한 차이는 김정은의 노예국가에서 탈출한 영양실조 상태의 북한 귀순병과 그를 살리기 위해 전력투구한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대조적인 모습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귀순병 몸에 수많은 기생충 발견
김정은 폭정 입증한 ‘스모킹 건’
북한 무작정 감싸온 중국도 책임
온 세계 손잡고 북 비핵화 나서야
귀순병을 치료한 한국 의료진은 B형 간염과 폐렴에 감염된 그의 배 속에서 최장 30㎝나 되는 기생충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국종 교수가 “의사로 일한 20년 동안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귀순병의 고난은 북한 주민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준다. 평양 당국이 핵무기에 거액을 쏟아부으며 민생을 내팽개친 결과 출신 성분 좋은 최전방 병사조차 영양실조와 기생충 감염에 시달리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조한 북한의 우방국(중국) 책임도 엄중하다.
북한 주민 2300만 명은 ‘출신 성분’이라 불리는 야만적인 카스트 제도에 갇혀 살아간다. ‘성분’이란 말 자체부터 악랄하다. 태어날 때부터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체제의 브라만에 해당하는 ‘핵심’ 계층과 바이샤에 해당하는 ‘동요’ 계층, 그리고 수드라나 파리아(천민) 취급을 당하는 ‘적대’ 계층으로 구분된다. 이는 식량과 교육, 일자리 등에서 각각 다른 처우를 받는 근거가 된다. 북한 주민 200만 명이 굶어 숨진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누가 먹고 누가 굶을지 여부는 오로지 성분에 따라 결정됐다.
지난달 말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이유도 북한의 야만적인 탈북자 숙청과 해외에서 활동해 온 반체제 인사 암살과 관련성이 크다.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떠돌아 온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을 올 초 북한 공작원들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독극물로 살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을 해외의 광산이나 벌목장에 파견해 노예 노동을 시키며 외화벌이를 한다. 이들 강제노동자가 가장 많이 파견되는 국가가 중국이다. 유엔은 김정은이 강제노동자 파견으로 매년 2억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 등에 북한 노동자 수입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북한의 이런 참혹한 실상을 상세히 파악해 국제사회에 전파해야 한다. (중국 등) 북한을 돕는 나라들의 후안무치한 행태와 김정은의 핵 위협 본질을 세계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문명국으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고 싶은 나라라면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위해 힘을 합해야 한다.
귀순병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수술 뒤 의식을 되찾은 그는 “한국 가요를 듣고 미국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꿈 많은 20대 젊은이가 북한에서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게 돼 기쁘다.
브라이언 후크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29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