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영의 일본 속으로
가루비는 올해부터 근무장소나 시간의 제한을 없앤 ‘모바일 워크’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출퇴근 시간을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고, 재택근무에도 제한을 없앴다. 주5일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도 있다고 한다.
일 기업 ‘야근·서류 지옥 탈출’ 확산
지정석 없애고 주5일 재택근무 도입
이토추, 야근 줄이려 새벽수당 신설
“일은 그대로인데 조기 퇴근만 강요”
근로자 불만에 ‘지타하라’ 신조어
이런 근무제도에 대해 처음엔 조직 내 반발이 거셌다. ‘부하 직원 관리가 안 된다’ ‘상사가 어딨는지 몰라 불편하다’ 등의 우려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를 밀어붙인 건 마쓰모토 아키라(松本晃) 회장이었다. 아예 “회사 따위 나오지 말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성과만 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이나 장소는 상관없다는 얘기다. 그는 “성과가 시간에 비례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실제 가루비의 1인당 영업이익은 2012년 401만 엔(약 3863만원)에서 2017년 747만 엔(약 7197만원)으로 크게 뛰어올랐다.
‘일하는 방식 개혁’이라는 단어는 2017년도 올해의 유행어 대상 후보에 오를 만큼 일본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2015년 12월 유명 광고회사 덴쓰 여사원의 자살사건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식 근무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일본 샐러리맨의 상징인 야근과 산더미 같은 서류, 지옥 같은 통근 전철 등을 바꿔보자는 논의가 진행됐다.
올해 후생노동성의 ‘일하기 좋고 생산성 높은 기업’으로 뽑힌 이토추(伊藤忠)상사는 아예 아침 출근시간은 오전 5시부터 가능하도록 했다. 대신 아침을 무료로 제공하고, 야근 때와 똑같은 수당을 지급했다. 단순히 출근시간을 앞당겼을 뿐인데 효과는 상당했다. 3년 만에 오후 8시 이후 근무자가 30%에서 5%로 줄었고, 시간외 근무시간도 같은 기간 15%나 줄었다. 직원들은 일찍 퇴근해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데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일단 근무시간이 줄어드니 월급이 주는 데 대한 반감이 크다. 또 일은 줄지 않았는데 근무시간 단축만 강요받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공안조사청에 근무하는 K는 “정부기관이다 보니 ‘일하는 방식 개혁’을 가장 먼저 추진하고 있는데 일은 줄지 않고 퇴근만 강요하니 오히려 스트레스가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간단축(時短)을 강요(harrassment)하는 ‘지타하라(じたハラ)’라는 말도 생겨났다.
민간 분야에선 기존의 인사평가 방식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인 사이보스는 노동시간과 경력이 연동된 기존의 ‘임금 테이블’을 과감히 버렸다. 근무시간이나 재택 여부 등 근로 조건을 다양화하는 대신에 임금제도에 ‘시장성’이라는 개념을 적극 도입한 것이다. 예를 들어 주 3회 재택근무를 하는 30세 프로그래머 A의 경우 연봉 기준은 그를 데려오려면 얼마를 제안해야 하는지 그의 시장성에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방식이 결코 직원들에게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사이보스 아오노 요시히사(青野慶久) 사장은 “어떤 의미에선 격차를 조장한다.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해 함께 맞춰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