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연극 -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수상작품집 2016
권여선 외 지음
문예중앙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그해, 여고생 김해언이 살해된다.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죽음은 남겨진 가족의 삶을 통째로 삼켜버린다. 사건의 파장은 이후 김해언의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의 삶을 속절없이 뒤흔들고 의미 없는 잉여로 만들어버린다. 특히 죽은 언니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동생 김다언에게 그 사건은 결코 멈추지 않는, 끝없이 계속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권여선의 중편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2016·『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에 수록)’는 이 끝나지 않는 상실의 고통을 포착한다. 작가는 이렇게 적는다. “끔찍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 무엇이 끝없이 진행된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우리를 고통 속에 내던진 신은 정작 자기가 한 일을 알지 못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이 가혹한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작가는 묻는다.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이것이 신의 잔인한 무지(無知)에 되돌려주는 작가의 대답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존재하고 지속되는 삶의 하찮음이, 그것이 그 자체로 품고 있는 티끌 같은 존엄이, 어쩌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남산예술센터는 박해성의 각색과 연출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11월 23일~12월 3일). 사건의 끝나지 않는 파장을 각자의 시간 속에서 겪어내는 다섯 등장인물의 말과 시선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고 엇갈리고 포개진다. 원작의 서사와 감정의 굴곡을 물리적 공간 속에 오롯이 입체화하려는 시도다. 반면 원작이 갖는 겹겹의 의미가 분산되고 평면화됐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이 소설의 무대화가 그만큼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겠다.
김영찬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