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대상은 일반적으로 ‘시대착오’에서 비롯된다. 이를 넘어 ‘병폐’로 지목될 경우 복수의 함의는 더 단단해진다. 오랜 세월 쌓인 ‘적폐’로 치부되는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개혁으로 포장된 복수의 칼날이 더욱 커다랗고 예리하게 빛날 게 뻔하다. 물론 개혁 대상에게 그렇다는 얘기다. 개혁의 주체한테는 그저 청산돼야 할 기득권의 저항일 따름이다. 하지만 개혁이 전기와 같다는 게 문제다. 저항이 클수록 효율성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신 불필요한 열이 발생한다. 발열은 소모적일뿐더러 계속되면 불이 붙거나 폭발할 위험마저 있다.
저항 최소화에 개혁의 성패 달려
내가 실천할 수 있을 만큼만 해야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개혁만 하면 된다는 거다. 나도 똑바로 못할 거면서 남이 못했다고 적폐니 청산이니 떠들어대면 저항만 커지고 믿음만 상실할 뿐이다. 자격 시비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 정부의 인사만 봐도 그렇다.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노벨상 수상 시인인 조지프 브로드스키가 수필집 『하나보다 작은』에서 한마디로 설명한다. “악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뿌리 내린다.”
옛 소련 출신으로 미국에 망명한 시인이 시를 쓰면서 터득한 진리다. 한마디 더 보태면 이렇다. “모든 시인은 독재적 성향을 지닌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 펜만 가진 시인도 그럴진대, 서슬 퍼런 권력의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야 오죽 그럴까. 마음뿐 아니라 몸도 다스리려 한다. 위험이 훨씬 커지고 즉물적이 됨은 물론이다. 칼을 꺼낼 때마다 브로드스키의 말을 주문처럼 외우는 게 좋다. 그래야 사(邪) 없이 옳은 초식이 나온다.
그래도 남들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맹신(盲信)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 지도자 대니얼 오코넬이 그 위험성을 신랄하게 경고한다. 그는 게일어만 고수하려는 아일랜드인들에게 영어를 함께 쓰는 게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설득할 만큼 열린 사람이니 들어볼 필요가 있다. “맹신은 머리가 없어 생각할 수 없고 가슴이 없어 느끼지 못한다. 맹신은 격노한 상태로 활동하고 폐허 위에 엎드려 쉰다. (…) 맹신이 지옥을 날다가 잠시 멈춘다면 그곳은 자신의 독수리가 더욱 잔인하게 사냥할 수 있도록 송곳니를 날카롭게 갈 수 있는 바위일 것이다.”
등골이 오싹하지 않나. 이를 피하려면 다시 말해 내가 실천할 수 있을 만큼만 개혁하는 것이다. 그걸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복수(개혁)를 할 때는 지나간 악의 크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선의 크기를 봐야 한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