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인터뷰에서도 여전했다. 그는 중국 진나라 시절 얘기를 꺼냈다. 항우가 유방한테 쫓기다가 돌연 뒤돌아서 유방의 추격대 속으로 들어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일을 언급했다. 이국종은 “항우가 강만 건너면 본거지로 피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은 오랜 전투에 지쳤고 할 만큼 한 것 같아서…”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처지를 빗댄 말이었다.
그는 6년 전 중증외상센터가 닻을 올릴 무렵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 안 그럴 거면 아예 (외상센터를) 안 하는 게 낫다”고 정부와 의료계에 외쳤다. 그동안 단기필마(單騎匹馬)로 홀로 적진에 뛰어들면서 외상센터를 뚫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각(舊殼·낡은 껍질)을 깨뜨리려다 보니 주변에 반대 세력이 생겼다.
그는 칼잡이(외과의사)답게 정치적 파장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건 중증외상 환자다. 소 출산을 돕다가 뒷발에 차여 장이 파열된 농민, 공사장에서 추락한 건설노동자들의 생명은 촌각을 다툰다. 6년 전 이국종은 헬기에서 내리다 무릎을 다친 것 말고는 몸에 별 이상이 없었다. 그 새 왼쪽 눈은 거의 실명했고, 고혈압·위장병에 시달린다. 이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깊은지 모른다.
그는 “원래 간·췌장 외과를 하려 했는데 주임교수가 외상외과를 하라고 해서 이렇게 됐다” “외상외과 의사도 밥벌이는 한다”고 말한다.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그가 돈키호테처럼 외상센터를 밀어붙인 덕에 전국 9개 외상센터 전담 의사 130여 명이 수만 명의 근로자·농민의 목숨을 살린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는 이국종이 진료에 매진하도록 놔줄 때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