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차별하는 사회<상>
5세대 공존은 예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이 2000년 7%가 넘는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뒤 17년 만에 1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됐다. 미처 4세대를 경험하지 못한 채 5세대로 가고 있다. 프랑스가 115년, 미국 73년, 독일 40년에 이런 변화를 겪은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다. 일본도 24년이 걸렸다. 17년이란 세월은 5세대 공존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짧다. 이렇다 보니 곳곳에서 노인들이 차별을 호소한다.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노인들은 가정 내 차별을 더 민감하게 여겼다.
◆ 가정 차별
노인 여럿일 땐 숨어 있다 택시 타
지하철 잘못 타면 “노인들 꼭 이래”
손주 결혼 등 집안일 결정서 배제
어르신 “나도 조언은 할 수 있는데”
올 노인 인구 14% 고령사회 진입
100세 시대 5세대 공존 준비해야
같은 경로당에서 만난 윤모(75·여)씨는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경로당 총무 일을 맡게 됐다. 그런데 자식들한테 “엄마는 왜 그런 곳에 다녀? 분별없는 사람 같다. 소속 그룹이 곧 지위를 말해 주는데, 경로당이 뭐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 뒤로 경로당 얘기를 안 꺼낸다고 한다.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노인들은 주요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는 걸 매우 서운하게 여긴다. 박형우(85·광주광역시 서구)씨는 최근 손자(30)의 혼사 세부사항을 결정하는 데서 배제됐다. 평소 가정의 중대사를 도맡아 결정해 왔는데, 최근에는 손자가 “주례 없이 결혼식을 한다. 할아버지는 이런 결혼식을 잘 모르시지 않느냐”고 일방적으로 알려줬다. 박씨는 “ 조언은 할 수 있는데 애초에 말을 안 하니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일상생활 차별
박병선(75·서울 성북구)씨는 종종 친목회를 하러 커피숍에 가는데, 종종 황당한 경험을 한다. 종업원·점장 할 것 없이 대놓고 반기지 않는다. 박씨는 “한 번은 인원수보다 커피를 적게 시켜서 나눠 마시려고 컵을 달라고 했는데 주지 않더라. 종업원이 귓속말로 ‘노인이 많으면 젊은 사람이 안 온다’고 말하는데, 다 들리게 하더라”며 “‘집에서 반려견 다음이 노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노인이 심하게 차별을 받는다”고 말한다.
성백엽(69·여·서울 용산구)씨는 식당에 가면 가운데를 피해 구석에 앉는 게 버릇이 됐다. 가운데 앉으면 종업원이 옆자리로 가라고 한 걸 몇 차례 경험하고 나서 처음부터 구석자리로 간다. 성씨는 “식당에서 노인들이 가운데 앉으면 영업에 지장이 있을까 봐 그러는 것 같다”며 씁쓰레했다.
박모(92·여·서울 성북구)씨는 버스를 타면 문 앞에 선다. 좌석 앞에 서면 앉은 사람이 불편할 것 같아서다. 멀리서 불러서 자리를 양보하면 가서 앉는다. 최근 한 승객이 자리에 앉아 있는 초등학생들에게 “어르신께 자리 좀 양보해라”고 말하니 애들이 “우리도 돈 주고 탔는데요”라고 따지는 걸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한다.
김관애(87·여·서울 용산구)씨는 동대문구 경동시장 같은 데서 다른 노인과 같이 서서 택시를 잡으면 그냥 지나간다고 한다. 지나치자마자 젊은 손님을 태워 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한 명이 나와서 택시를 잡고 나머지는 숨어 있다가 차가 서면 나와서 탄다”고 말한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김모(75)씨는 10월 초 경험을 털어놓으며 분개했다. 손주들 추석빔 옷을 고르고 있는데 저쪽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왔다. 그러자 주인이 “할머니 이거 하실 거예요, 안 할 거예요?”라고 쏘아붙이더니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민영·정종훈·박정렬·백수진 기자 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