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훈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고령화와 4차 산업화라는 메가트렌드가 수도권보다도 지방 중소도시들을 먼저, 직접적으로 타격하게 되고 이런 흐름이라면 2040년에는 인구가 ‘0’이 되는 지방도시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뼈아픈 진단을 읽어 내려가면서 필자는 두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나는 강원도 평창, 다른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해 놓고 있는 분권개헌.
국가주의, 발전주의, 성과주의로
지방 중소도시 재생시킬 수 없다
지방의 미래를 보는 관점 바꿔
지방의 삶의 질에 가치 둬야
분권개헌이 정치담론을 넘어
우리 삶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한편에서는 동계올림픽이 가져올 수십조원(?)의 경제효과와 그에 따른 낙수효과가 애써 강조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올림픽 이후 방대한 경기 시설의 유지·보수에 들어갈 재정 부담에 대한 걱정이 크다. 필자는 올림픽이라는 거대 이벤트, 중앙정부 지원, 지방의 미래라는 복잡한 3차원 방정식을 접하면서 우리가 문제를 보는 관점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할 시점에 서 있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발전)국가 중심의 사고에서 도시 중심으로 사고 단위의 전환, 목표 중심의 발전주의 경제관으로부터 삶의 질이라는 과정 중심의 사고로 전환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이 어제오늘 사이의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 홈페이지를 둘러보면,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절실한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직위 홈페이지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1)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2)국가브랜드를 향상시키고 (3)SOC 확충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며 (4)국가발전 에너지를 결집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큼지막하게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30년 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룬 중견 한국이 전 세계 무대에 신고식을 하던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의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셈이다.
장훈칼럼
이제라도 지방의 미래를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외형적 발전으로 지방의 성패를 재단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속도감과 빡빡한 경쟁 속에서 나를 잃어가는 수도권 공룡도시의 삶과 달리 공간적·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삶, 거기서 오는 삶의 충만함, 지역 특색을 살린 마을기업, 소박하고 단단한 자립경제에서 지방, 특히 지방 중소도시의 미래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상반기에 분권 개헌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수도권의 극심한 집중과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력은 수평적이고 유연한 네트워크, 끊임없는 분산과 탈중심성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의 디지털 경제와 거대한 부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우리 모두 공감하는 바다. 문제는 어떤 분권, 누구에 의한 분권이냐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수직적 분권, 중앙으로부터의 시혜적 분권, 중앙과 지방 사이의 제로섬으로서의 분권을 이번에는 넘어서야 한다.
다시 평창으로 돌아가 보자. 평창군이 내세우는 상징은 “Happy 700”이다. 평창이 자리 잡고 있는 해발고도 700m에서 사람은 육체적·심적으로 가장 쾌적함을 느낀다는 ‘과학’에 기반한 상징이다.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도시로서의 화려함, 값비싼 동계 레저타운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방대한 산림 속 자연과 교감하는 삶, 양질의 농축산물, 걷기 좋은 힐링 도시로 자리매김할 때 분권은 정치담론을 넘어 우리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장 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