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입니다. 마치 영화처럼요.”
지난 20일 영화감독 김종민(38)씨는 '학습'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천시 산곡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왼쪽 팔과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뇌병변 편마비’ 장애인이었다. 그는 3살 때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며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한다. 말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왼쪽 다리를 약간 절고 왼쪽 손도 불편하다. 노트북을 쓸 때도 타이핑을 오른손으로만 한다. 현재도 날씨가 추워지면 마비 증상이 심해진다. 그는 현재까지 장편 다큐멘터리 1편과 단편 영화 3편을 찍었다.
김 감독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6월 1학년 때 고교를 그만둔 이후다. 고교 입학 이전부터 그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이 덕분에 남들과는 세상을 좀 더 다르게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과목을 암기식으로 배우기보다는 좋아하는 책을 자유롭게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평생학습대상 영화감독 김종민씨
세 살 때 머리 다쳐 오른손만 이용
비디오가게 점원 하다 영화 눈떠
장애인 대상 강좌서 함께 꿈 키워
김씨는 지역 문화센터 등 영화 관련 강의를 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나섰다. 인천인 집에서 서울로 매일같이 영화를 공부하러 다녔다. 학점은행제를 이용해 전문지식도 쌓았다. 실무를 배우기 위해 촬영현장에서 스태프로 일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주변에 베풀었다. 2012년부터 초·중·고교생에게 UCC 제작, 영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김 감독은 “내가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면서 또 한 번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뜻깊은 일은 장애인들에게 영화를 가르쳐준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인 ‘우리동네평생교육학교’에서 장애인 대상의 영화 교실을 운영하게 됐다. 이곳 수강생들과 지난 7월엔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시나리오 작성과 연기·촬영·편집을 모두 김 감독과 그의 수강생들이 맡았다. 영화 제작에 드는 비용은 그가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에 자비를 보태고 주변 도움으로 충당했다.
이 영화는 제목이 ‘하고 싶은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김 감독처럼 뇌병변 장애를 가진 남성이다. 또박또박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주인공이 호감을 가진 카페 여종업원에게 '아메리카노 주세요'라는 말을 건네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 김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수강생들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에 따르면 그가 수업 초반에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는 수강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영화를 만들면서는 반응이 달라졌다. 김 감독은 "수강생 중에 영화로 자기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 이도 있더라"며 “장애인들이 더 큰 꿈을 갖고 꿈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다음 목표는 장편영화 제작이다. 현재 두 편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세상엔 편견과 오해가 가득하지만, 사람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남들에게 알려주면서 세상의 편견들을 바꿔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우수상(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은 김용이(52·대전 대덕구)씨와 박병준(48·경남 창원시)씨가 받는다. 김씨는 자동차 공업소를 운영하는데 40대 중반 나이에 대학생이 됐다. 하루 4시간씩 자며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산업인력공단의 현장 교수로 선정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박병준씨는 국가기술자격증을 17개나 땄는데 현재도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닌다. 현재는 자기 이름을 넣은 전기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박씨는 어릴 적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고고 졸업 후 바로 취직했다. 이후 20여년간 일과 학습을 병행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자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 활동도 한다.
올해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시상식은 24일 오후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다.
윤석만 기자, 인천=이태윤 기자 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