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6일 국정감사장에서 ‘주사파 논쟁’이 벌어졌을 때, 임종석이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뜻밖이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날 “주사파와 전대협이 장악한 청와대의 면면을 봤다”며 색깔론을 들고나왔다. 야당의 색깔론 공세는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임종석은 “그게 질의냐”며 거칠게 반발했다. “5·6공화국 때 정치군인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의원님은 어떻게 살았는지 보지는 않았다”며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좋은 기회를 임종석은 왜 그렇게 흘려보냈을까. “나는 주사파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이 김일성 사상을 추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자신의 입으로, 딱 한마디만 했으면 그를 둘러싼 모든 논란은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야당 색깔론 공세 빌미 안 주게
임종석이 직접 나서 해명해야
그럼에도 임종석을 아는 많은 이들은 “주사파나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기엔 결이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한다. 임종석 스스로도 지인들에게 “주사파였던 적이 없는데 무슨 전향 선언이냐”고 반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나는 주사파였던 적이 없다”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러지 않으니 대북 정책과 관련해 잡음이 날 때마다 이 정부의 안보관을 의심하게 되는 것 아닌가.
지난 9월 대통령이 국내에 없을 때 문정인 대통령 특보를 비판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공개적으로 질책한 것도 임종석이요, 며칠 전 북한 병사 탈북 때 “비조준 경고사격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통령의 ‘문제 제기’를 다음날 단순한 ‘의견 제시’로 뒤집은 것도 임종석의 비서실이다. 그럴 때마다 국민은 헷갈리고 불안하다. 오죽하면 요즘 만나는 기업인마다 “대통령이 주사파에 포위된 것 아닌가. 과연 (이 정부가) 시장경제는 하는 건가, 자본주의 체제는 맞나”라며 잔뜩 의구심을 털어놓겠나.
대통령 주변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뀌는 걸 바로 지난 정권에서 지켜본 국민이다. 그런 국민이 임종석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